테네시 세탁기공장 ‘숨은 이유’는
#1982년
금성사(현 LG전자)는 미국 앨라배마 주 헌츠빌에 컬러TV 공장을 세웠다. 국내 기업 최초의 해외 공장이었다. 이 공장은 10년 만인 1992년 가동을 멈췄다. 높은 인건비 부담을 견디지 못했고 미국 정부가 부품 현지조달 비율을 높이라고 압박했기 때문이었다.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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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가 인건비가 비싼 나라 중 한 곳인 미국에 다시 발을 들여놓은 배경은 뭘까.
첫째 원인은 단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정확히는 ‘트럼프의 채찍’이다. 트럼프는 미국 현지 기업은 물론이고 해외 기업에도 전방위적으로 미국 내 투자 및 일자리 창출을 압박하고 있다. 멕시코산에 높은 관세를 물리겠다고 엄포를 놓고 세계 각국과의 무역협정도 재검토할 태세다.
미국 대표기업인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28일 캘리포니아 주 쿠퍼티노 본사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미국을 돕기 위해 더 많은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내 생산과 부품 조달 확대를 우회적으로 시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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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의 미국 투자 러시를 트럼프 압박으로만 해석해서는 중요한 포인트를 놓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투자를 결정할 때 손익계산서를 따져보지 않는 기업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높은 인건비 부담은 35년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LG는 미국 공장이 완공되면 동남아 공장에서 생산하던 물량을 대거 옮겨갈 예정이다. 미국 내 인건비는 동남아의 3배가 넘는다. 결국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당근’이 무엇인지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은 LG전자와 테네시 주가 MOU를 맺던 날 국회 연설에서 “기업들이 미국에서 사업을 보다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내 기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법인세 인하 등 세제개혁안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LG전자 공장을 유치한 테네시 주정부도 강력한 인센티브 정책을 내세웠다. 한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세금 감면이나 공장 건설비용 지원, 인프라 개선 등 상당한 혜택을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LG전자는 지난해 말 미국의 4개 주를 공장 후보지로 정했다. 이 중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테네시 주를 낙점했다.
미국 북부 지역에 비해 친(親)기업 정서가 강한 것도 공장 용지 선정에 중요한 요소가 됐다. 조성진 LG전자 최고경영자(CEO)는 “오랜 기간 검토해 온 미국 내 생산기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테네시 주에서 찾았다”고 했다. 공장자동화로 생산성이 좋아지면서 인건비 부담이 과거에 비해 줄어든 것도 선택의 한 요인이었다. LG전자가 운영 중인 미국 시카고 연구개발(R&D)센터와의 시너지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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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전자의 미국 공장 투자 결정은 한국 경제 전체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트럼프 정부가 채찍과 동시에 제시한 강력한 기업유인 정책은 투자 기업과의 ‘윈윈’을 통해 미국 내 일자리를 확실히 창출하고 있다. 반면 국내는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반기업 정서 확산과 대기업 규제 움직임, 해외 투자 유인책 부족 등이 겹치면서 투자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요즘 분위기면 국내외 기업 사이에 생산기지로서의 한국 기피 현상이 고착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한국이 매력적인 입지가 될 수 있게 만드는 게 중요한데 우리 정부나 정치권은 그런 노력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