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자 오랫동안 안돌본 가족, 강제입원 신청 제한 복지부, 개정 시행령 3월중 입법예고
5월 30일부턴 정 씨처럼 정신질환자를 오랜 기간 돌보지 않은 가족은 강제입원을 신청할 수 없게 된다. 보건복지부는 정신질환자를 강제입원시켜 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보호의무자의 범위에서 △부양의무를 명시적으로 거부·포기하고 장기간 사실상 이행하지 않았거나 △고령·질병·장애로 의사결정 능력이 부족한 가족을 제외하는 내용의 개정 정신건강복지법(현 정신보건법) 시행령을 이달 중 입법예고할 방침이다.
정부가 보호자의 범위를 좁힌 것은 그간 상속·유산 등 재산 다툼, 가족 간의 갈등으로 인해 정신질환이 없거나 증상이 경미한 환자를 강제입원시키는 인권침해 사례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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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복지법이 전면 개정되는 것은 1996년 제정 후 처음이라 혼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가장 큰 쟁점은 “환자가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어야 강제입원을 시킬 수 있다”는 조항이다. 입원 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워 강력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는 위험한 일부 환자도 풀려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자해 위험’의 범위에 자살·자해를 시도할 위험이 있는 경우뿐 아니라 증상 악화나 약물 복용으로 인해 환자의 건강이 위험한 경우까지 포함시키고, ‘타해 위험’엔 다른 사람의 신체뿐 아니라 재산, 명예를 침해할 위험이 있는 경우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시행 초기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강제입원의 필요성을 판단할 수 있는 재량을 넓게 인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설명이다.
강제입원의 적절성을 평가할 전문의 인력을 갖추는 작업은 좀 더 까다롭다. 현재는 보호자 2명이 동의하고 전문의 1명이 진단을 내리면 강제입원이 가능하지만, 개정법 시행 이후엔 다른 병·의원 소속 전문의가 추가로 찬성해야 2주 이상 강제입원시킬 수 있게 된다. 복지부는 강제입원으로 인해 ‘제2 전문의’의 진단을 받아야 하는 사례가 연간 12만9863건일 것으로 추산했다. 의사 1명이 하루에 환자 12명을 진단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 51명의 전문의가 진단 업무에만 매진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전문의들의 업무 부담이 지나치게 높아져 제대로 된 진료와 진단이 이뤄질 수 없다며 법을 재개정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복지부는 우선 국립정신건강센터에 전문의 16명을 충원해 타 병원의 강제입원 진단 지원을 전담하는 ‘기동팀’을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광역 단위 국립정신병원이 일차적으로 진료를 맡되 손이 모자라는 지역에선 대학병원, 민간 병·의원 전문의가 출장 진단 업무를 수행하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기동팀 소속 전문의를 정신병원 취약지로 급파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만들어두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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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