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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뭐 먹지?]엄마 손맛 담긴 백반이 그리워

입력 | 2017-02-23 03:00:00


엄마 손맛 담긴 백반이 그리워

정신우 국내 1호 남성 푸드스타일리스트·일명 잡식남

점심시간은 한 시간여의 ‘밥 전쟁’이다. 아무거나 찾는 사람은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 인기 있는 식당은 ‘입도선매’ 해야 한다. 작당(作黨)하여 자리를 꿰차고 사전 모의를 끝내고 그야말로 밥을 해치운다.

그나마 ‘혼밥’을 먹는 이들은 도시락, 컵라면, 삼각김밥 같은 편의점 즉석식품에서 자기만족을 찾는다. 집 밥이 유행이라지만, 사실 집 밥은 없다. 재료와 만드는 법이 다른데 이름이 같다고 엄마의 맛이라니 억지다.

실제 우리들의 점심은 가난하다. 대충 한 그릇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어제 먹은 점심 메뉴가 무엇이었는지도 모르는 기억상실증을 갖고 산다. 살기 위해 먹는 사람들이 먹기 위해 산다는 거짓말을 한다. 때로는 ‘가격 대비 성능’을 따지느라 입에 무엇이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먹는다. 허기를 모면하기 위해 끼니를 해결한 식탁에는 집 밥의 추억도 어머니의 손맛도 없다. 그래서일까 유독 반찬이 많은 백반이 인기가 많다.

백반은 찬보다 밥이 귀한 시절엔 높고 귀한 밥상이었다. 반찬이 밥보다 중요한 요즘엔 ‘낮고 착한’ 밥상이다. 가격을 보라. 비싼 임차료와 인건비를 감당해야 하는 서울의 악조건 속에서 1인당 6000∼8000원은 감지덕지할 만한 가격이다. 하물며 요즘은 반찬 추가도 눈치를 봐야 한다.

실정이 이렇다 보니 전통 상차림의 5첩 반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요새 물가를 보면 반찬 전문점의 나물 170g의 가격이 평균 3000원이다. 세 젓가락 집으면 없다. 국과 밥, 김치를 제외하고 5첩 반상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짓수에 속아서는 안 된다. 김치와 젓갈, 장아찌, 무침이 많아 봤자 젓가락은 국과 밥 위에서 맴돌 뿐이다. 손이 가는 찬이 있어야 하는데 한정식집도 아니니 어쩌다 달걀말이라도 나오는 백반 집을 만나면 귀인을 만난 듯 반갑다.

맛있는 반찬은 손이 많이 가고 재료가 넉넉해야 맛이 난다. 1917년에 발간된 요리연구가 방신영 선생의 최초의 근대식 한국 요리책인 ‘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에는 맛이 빤히 보이는 부식(副食) 만드는 법이 적혀 있다.

쇠고기 납작 썰어 신선한 명태와 조려 낸 지짐이, 고추장 푼 물에 비웃(청어)과 파를 넣은 지짐이, 달걀과 두부를 섞어 양념해 시금치와 당근을 넣고 말아 낸 달걀두부말이, 하물며 콩자반 하나도 허투루 만들지 않는다. 제대로 하자면 한없이 어렵지만 그래야 맛이 나는 것이 음식이다.

요즘 백반 집엔 별의별 찬들이 다 나온다. 어묵채볶음, 맛살무침, 소시지구이, 양파 피클, 돈가스가 반찬으로 나오는 밥집도 있다. 손님들의 입맛도 귀신같다. 대충 차려 낸 음식에는 손님들이 등을 돌린다. 우렁된장쌈밥, 곤드레밥, 청국장 정식 같은 메뉴가 인기다.

엄마의 감성을 팔지 말고 건강한 메뉴로 제대로 차려 내야 한다. 먹고 싶어야 좋은 밥상이다.

정신우 국내 1호 남성 푸드스타일리스트·일명 잡식남 cafe.naver.com/plate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