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의 크레타 섬
손가인 기자
여행은 본능과 마주하는 일입니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가고 싶은 곳에 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이야기가 시작되는 에게 해 건너 크레타 섬은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태어난 곳입니다. 소설 속 ‘나’는 카잔차키스의 청년 시절 모습이며 초인(超人) 조르바도 실존 인물입니다. 카잔차키스는 1917년 조르바와 함께 크레타 섬에서 광산사업을 합니다. 이런 사실은 소설에 그대로 나옵니다.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그리스의 크레타 섬.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은 이곳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는다. 동아일보DB
“언덕 위로 올라 사위를 내려다보았다. 화강암과 단단한 석회암의 풍경이 펼쳐졌다. 거뭇한 캐러브콩 나무, 은빛 올리브 나무, 무화과와 포도 넝쿨도 시야에 들어왔다. 어두운 계곡으로는 오렌지 나무 숲, 레몬 나무와 모과 나무가 보였으며, 해변 가까이로는 채소밭도 보였다. 가까이 있는 모래섬들은 막 솟아오르는 아침햇살에 장밋빛으로 반짝거렸다.”
이 구절을 읽노라면 푸른 지중해가 눈앞에 펼쳐진 듯합니다. ‘나’는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할 때마다 크레타 섬의 언덕과 해변을 찾습니다. 그의 뒤를 한 발짝 떨어져 따라가는 독자 역시 1900년대 초의 크레타 섬을 함께 거닐게 되는 것입니다.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크레타 섬은 삶의 소중함을 아는 조르바와 닮았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조르바의 말은 존재 깊숙이에서 나와 온기를 간직하고 있지만 자신의 말은 종이로 만들어진 것들에 지나지 않았음’을, 손을 뻗으면 잡힐 거리에 행복이 있음에도 무기력하게 시간을 낭비했음을 깨닫습니다. 갈탄광 사업은 망해버리지만 모든 것을 잃고 난 후에도 ‘나’와 조르바는 크레타 섬을 배경으로 행복하게 춤을 춥니다. 잃을 것이 없어 자유로워졌기 때문입니다.
“바다, 가을의 따사로움, 빛에 씻긴 섬, 영원한 나신(裸身) 그리스 위에 투명한 너울처럼 내리는 상쾌한 비. 나는 생각했다. 죽기 전에 에게 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그리스인 조르바’(1946년),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손가인 기자 ga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