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찰청 근무 이철한 경위, 노숙자 재활시설 ‘은혜의 집’ 인연 지문감식으로 신원 확인 입소 도와
이철한 경위가 17일 은혜의 집에서 생활하는 70대 노인을 상담하며 그가 기억하는 내용을 적고 있다. 이 경위는 신원 확인을 위한 지문 채취에 앞서 상담을 통해 노인들의 불안감을 없애려 하고 있다. 인천지방경찰청 제공
17일 오후 인천 서구 심곡동 노숙자 재활 시설인 ‘은혜의 집’ 상담실. 인천지방경찰청 광역과학수사2팀에서 근무하는 이철한 경위(45)가 70대 할아버지의 손가락에서 지문을 채취했다. 이 시설에 들어가기 위해선 신원 확인 절차부터 거쳐야 한다. 70대 할아버지는 오랜 노숙 생활에 따른 치매 증상을 보여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경위는 신원조회서에 열 손가락 지문을 정성스럽게 찍은 뒤 할아버지를 돌려보냈다. 그는 “사무실에 들어가 지문자동검색시스템을 활용해 신원을 확인한 뒤 은혜의 집에 통보해 주면 된다”며 “지문 상태가 좋으면 30분 정도면 신원이 밝혀지지만 지문이 닳거나 손상된 경우 1주일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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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설에 들어가려는 노숙자 가운데 상당수가 치매나 정신장애 등으로 이름이나 나이, 주소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지방자자단체가 지원하는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 경위는 은혜의 집을 방문해 노숙자의 신원을 확인해 주고 있다. 이 일을 17년째 하고 있다.
이 경위는 보통 2주일에 한 번 정도 정기적으로 은혜의 집을 방문하고 있다. 노숙자의 생명이 위독해 신원 확인 요청이 들어오면 밤에도 달려간다. 그가 지금까지 신원을 확인해 준 노숙자는 1000여 명에 달한다. 이 중 연락처를 파악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낸 노숙자가 100여 명이다. 가출이나 실종 신고가 접수된 노숙자의 경우 애타게 소식을 기다리던 가족이 바로 찾아와 감사 인사를 한 뒤 데려간다. 2005년 70대 할아버지의 신원을 확인해 가족에게 연락한 결과 자식들이 17년 동안 찾아다닌 노인이었다. 가족이 만나 서로 부둥켜안은 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어렵게 노숙자의 신원을 확인해 부모나 자식들에게 연락하면 대부분이 “연락 끊고 사는 지 오래됐으니 알아서 하라”고 응대한다. 이 경위는 “사건 현장에 남아 있는 증거물을 찾아 범인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노숙자의 신원을 확인해 도움을 주는 것도 경찰관이 해야 할 일이다. 정년을 맞을 때까지 은혜의 집을 찾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