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훈 출판평론가
751년 고선지가 이끄는 당군이 아바스 왕조 군대에 패한 탈라스 전투에서, 포로로 끌려 간 당군 가운데 두환(杜環)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 지중해 일대를 전전하다 762년 페르시아 만에서 상선을 타고 귀국했다. 두환이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경행기(經行記)’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그의 친족 두우(杜佑)가 편찬한 ‘통전(通典)’ 등 여러 문헌에 다음 내용을 비롯한 일부가 남았다.
‘불림국(비잔틴) 사람들의 얼굴은 홍백색이다. 남자들은 흰옷을 즐겨 입고 여자들은 구슬로 치장하며 비단을 입는다. 술 마시기를 좋아하고 마른 빵을 주로 먹는다. 7일마다 하루를 쉬는데 장사도, 돈 출납도 하지 않고 종일 쉰다.’
서양에서는 기원전 5세기 이전 그리스 철학자들의 논저 대부분이 전해지지 않는다. 다른 문헌에 나온 내용을 모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선집’으로 만나야 한다. 전란, 화재, 천재지변, 고의적인 파괴, 무지와 무관심 등과 함께 나무, 양피지, 종이 같은 책 만드는 재료의 물리적 소실(消失)도 책이 사라지는 원인이다.
근현대 문헌이라고 해서 안심할 수는 없다. 19세기 초부터 1980년 이전까지 나온 책 대부분은 산성지(酸性紙)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천년견오백(紙千年絹五百)’, 종이는 1000년을 가고 비단은 500년을 간다 했지만, 전통 한지와 달리 변색되고 바스라지기 쉬운 산성지의 수명은 50∼100년이다. 탈산 처리가 시급하다. 2016년 말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문을 연 대량 탈산처리실의 역할이 크게 기대된다.
표정훈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