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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단비의 못 전한 뉴스] 낙태 실패로 태어난 아이 보듬은 ‘SOS엄마’의 사랑

입력 | 2017-02-17 13:46:00

뜻밖의 찾아온 초등학교 졸업선물에 SOS어린이마을에 모처럼 웃음꽃이 피었다. 친부모에게 상처를 입고 이곳까지 온 아이들은 학교생활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지만 SOS엄마의 헌신적은 사랑으로 무사히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장승윤기자tomato99@donga.com


학대 파양 장애…. 감당키 힘든 상처를 하나 혹은 둘 이상 갖고 있는 아이들이 생활하는 서울 양천구 SOS어린이마을. 이곳에 모인 아이들은 나이도, 성별도 다르지만 피를 나눈 형제처럼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생활한다.

서울SOS어린이마을엔 10여 가구가 있다. 한 가구당 6, 7명의 아이들이 가족 형태를 이뤄 생활한다. 이들에겐 이른바 ‘SOS엄마’가 있다. 친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절망적인 순간 아이들을 구조한 부모들이다.

76명의 아이들 중 8명이 올해 초등학교를 졸업한다. 초등학교 졸업은 SOS엄마들에게 큰 기쁨 중 하나다. 보통 고통의 기억으로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에서 입소하기 때문에 학교 생활에 좀처럼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한 SOS엄마는 “학교를 보내놓고 ‘왕따 당하진 않을까’, ‘선생님이 우리 애들만 미워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지낸 날이 더 많다. 밤새 얘기해도 모자랄 지경”이라고 말했다.

최연우 군(가명·13)은 SOS엄마 이필희 씨(45)의 ‘아픈 손가락’이다. 연우는 낙태 실패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젊은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한 뒤 버려졌다.

“태아도 감정이 있잖아요. 엄마가 자신을 낙태하려는 걸 알았을 때 배 안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그래서인지 보통 아이들이 쉽게 ‘엄마’라는 부르지 못하는데 연우를 나를 보자마자 안 떨어지더라고요.”

10여 년 전 들어온 연우의 심리상태는 매우 불안했다. 바로 앞에 놓인 물건도 찾지 못하는 심각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였다. 엄마에게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애착증세를 보였다. 또래 친구들로부터 놀림 받기 일쑤인 ‘틱 장애’마저 생겼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담임선생님이 불렀어요. 병적으로 산만해서 수업에 적응할 수 없다고요. 그럴 때마다 ‘우리 연우가 장점이 많은 아이다. 선생님이 아직 발견하지 못하신 거다’고 말했죠.”

SOS엄마는 연우의 심리치료를 위해 여러 병원을 전전했다. 연우는 조금씩 바뀌었다. 초등학교 6학년 무렵엔 전교회장 후보로 나갈 만큼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이 됐다. ‘학업 포기’를 권유하는 학교 측 조언에도 연우를 포기하지 않았던 SOS엄마의 한결 같은 사랑이 낳은 결과다.

엄마는 중학교 입학할 연우에게 멋진 새 가방과 신발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수선한 나라 사정에 기업들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 센터 재정여건이 부쩍 나빠진 데다 다른 아이들의 학용품을 준비하는 데도 예산이 빠듯했다. 이런 사정이 알려지자 양천구 아동위원협의회가 나섰다. 가방과 노트 등 학용품을 선물상자에 담아 14일 어린이마을을 찾았다. 겨울바다처럼 고요했던 마을에 모처럼 웃음꽃이 피었다.

이 씨는 “며칠 전 함께 간 마트에서 갖고 싶은 책가방을 만지면서도 차마 ‘사 달라’고 말하지 못하던 연우 모습에 마음이 무척 아팠다”며 “앞으로도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키우겠다”고 말했다. SOS엄마들은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고 서약한 뒤 마을에 입소해 상처 있는 아이들을 성인이 될 때까지 보살핀다. 졸업식에서 연우는 훈장 같은 졸업장을 들고 이 씨 품에 안겼다.


김단비기자 kubee0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