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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국민은 헌법재판소를 믿는다

입력 | 2017-02-11 00:00:00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 측은 어제 오후 3시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 앞에서 집회를 연 것을 시작으로 오늘 주말 광화문 집회에 합류하는 1박 2일 행진을 벌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된 이후 촛불집회 참석을 중단했으나 오늘부터 다시 참석하기로 하고 소속 의원 전원에게 총동원령을 내렸다. 새누리당도 일부 친박(친박근혜) 의원들과 대선 주자들이 오늘 덕수궁 대한문 앞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다.

헌재가 박 대통령 측과 국회 측에 23일까지 최종의견서 제출을 주문함에 따라 탄핵심판 결정은 3월 초에 내려질 가능성이 유력해지고 있다. 결정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탄핵 찬반 양 진영의 대결은 격화되는 양상이다. 정치인들까지 광장에 뛰어드니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다.

누구나 탄핵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다만 그런 의사 표현은 헌재 결정이 나오면 따르겠다는 약속을 전제로 한다.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헌재 결정을 따르겠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결정을 앞둔 지금은 문 전 대표가 국회의 탄핵소추 전에 촛불집회에 참석한 것과 상황이 달라졌다. 지지율 1위 대선 주자의 촛불집회 참석은 헌재가 탄핵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협박으로 비칠 수 있다. 헌재 결정에 승복할 자세도 돼 있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이 나라의 법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문 전 대표는 당장 승복 의사를 밝혀야 한다. 시민들도 촛불집회에 참석해 탄핵 촉구를 외치든, 태극기 집회에 참석해 반대를 외치든 헌재 결정을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가 돼 있어야 할 것이다.

위기다. 국론 분열을 넘어서 국민 충돌의 전운마저 감돈다. 헌재에 이 나라의 명운(命運)이 걸렸다. 1987년 민주화의 산물인 헌재는 첨예한 갈등의 순간마다 국민 통합을 이끌어냄으로써 길지 않은 역사에서 신뢰를 쌓았다. 박한철 소장의 퇴임 이후 헌재는 8인 재판관 체제라는 비정상적 상황에 있다. 대통령 측 대리인단은 7인 체제에서 심판을 받기 위해 지연작전을 펴고 있으나 헌재는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는 3월 13일 전까지 가능한 한 8인 체제에서라도 결정을 내려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친절하게 듣고, 빠진 것 없이 대답하고, 냉정하게 판단하는 것을 재판관의 덕목으로 꼽았다. 모순된 요구 같지만 헌재는 신속하면서도 공정한 결정을 내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헌재는 2004년 국회가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탄핵소추했을 때 “탄핵 결정을 할 것인지는 단지 헌법이나 법률의 위반 여부가 아니라 그 위반 사항이 중대하여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고, 더 이상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수행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에 이르렀는지에 달려 있다”고 천명했다. 대통령 탄핵 결정의 유일한 판례다. 헌재가 이번에도 국론 분열을 최소화할 길을 찾아낼 것으로 믿는다.

헌법재판관은 사건을 심판하지만 결국 그 심판에 의해 자신이 심판받는다. 2004년 노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는 재판관 누가 어떤 의견을 냈는지 밝히지 않아도 됐다. 이번에는 재판관 모두가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걸고 의견을 밝히도록 돼 있다. 안팎의 압박이 심해질수록 좌고우면하지 않고 재판관의 양심에 충실한 판단을 하는 것만이 주권자인 국민을 납득시키고 역사 앞에서 떳떳한 결정을 내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