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나흘째 현장 점검해보니
구석에는 전기난로 같은 전열기와 각종 전자제품의 전선이 어지럽게 꼬여 있었다. 주변에 먼지도 뿌옇게 쌓여 있었다. 콘센트가 부족해 멀티탭 한 개에 다른 멀티탭을 추가로 연결해 사용 중이었다. 한눈에 봐도 합선이나 과부하가 걱정됐다.
8일 찾은 서울 영등포구 신길2동 김모 씨(82)의 안방 모습이다. 법대로 하면 김 씨는 현행법을 위반한 범죄자다. 주택마다 소화기와 단독경보형 감지기 설치를 의무화한 개정 소방시설법이 유예기간 5년을 마치고 5일부터 전면 시행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확인한 김 씨의 집 안에는 스프레이형 소화용구만 있었다. 이는 번질 가능성이 낮은 작은 불만 끌 수 있다. 김 씨 집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골목길에 공용 소화기가 있다. 집 안에 불이 났을 때 고령에 지병까지 있는 김 씨가 3kg이 넘는 소화기를 들고 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광고 로드중
가구별로 소화기 1대, 방마다 경보기 1대를 설치하도록 한 소방시설법은 2011년 개정됐다. 2006년 서울 송파구 고시원 화재로 8명이 사망한 것이 계기다. 화재 사망자의 절반 이상은 주택에서 발생한다. 기초 소방시설만 잘 갖추면 화재로 인한 사상 규모를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2012년 2월 법 시행 후 유예기간 5년까지 거쳤지만 이런 법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주민이 대부분이다. 다세대주택에 사는 조지륜 씨(34·여)는 “주민센터에서 화재예방 교육을 받으면 소화기는 준다고 했지만 생업 때문에 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보통 시중에서 소화기는 2만 원, 건전지를 넣는 경보기는 1만 원 안팎이면 구입할 수 있다.
경보기 등을 설치하지 않아도 처벌 규정이 없다 보니 주민은 물론이고 관련 기관도 적극적으로 나서질 않고 있다.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주택이 사적 공간이라 점검할 권한이 없다 보니 제재 규정을 만들기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건물주나 지방자치단체 제재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집집마다 3만 원 정도의 비용만 들이면 큰 참사를 막을 수 있다”며 “지자체가 예산을 들여 시민들에게 소방안전시설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길호 기자 kil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