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비상]문제점 드러난 항체 형성률 조사
한우농가 방역 충북과 전북에 구제역이 발생한 가운데 7일 오후 전북 익산시 삼성동의 한 한우농가에서 스프링클러를 이용해 방역을 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구제역 발생 농가에서 소의 항체 형성률이 5∼20%로 현저히 낮은 것을 감안해 8일부터 전국적으로 백신 일제 접종을 실시한다. 익산=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11개월 만에 재발한 구제역은 방역당국의 허술한 관리와 축산농가의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가 결합된 ‘인재(人災)’로 드러났다. 소의 백신 항체 형성률이 100%에 가깝다던 정부의 호언장담과 달리 일부 농가의 경우 ‘제로’에 가까운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정부는 방역 실패의 책임을 농가 탓으로 돌리고, 농가는 백신 효능을 신뢰하기 어렵다며 반발하는 등 진실 공방까지 벌이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전문가들은 실적 채우기에 급급한 방역체계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 부실한 표본검사 맹신한 정부 vs 접종 매뉴얼 무시한 농가
표본 선정 방식에서도 문제점이 발견됐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검사 표본인 소 사육 농가는 사육 규모에 상관없이 한 마리만 검사한다. 이 소에서 항체가 발견되면 해당 농가에서 키우는 소들은 모두 항체가 형성됐다고 보고 추가 검사를 하지 않았다. 이 결과 5%가 100%로 바뀌는 마법이 가능했다.
이번에 구제역이 터진 충북 보은군의 농장은 195마리의 대규모 농장이었지만 단 한 번도 표본 농가로 선정된 적이 없었다. 전북 정읍시 농가도 2015년 소 한 마리만 항체 검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정확하지 않은 표본조사 결과를 맹신한 채 엉터리 구제역 방역대책을 수립해 온 셈이다.
하지만 정부는 ‘백신의 실패’가 아니라 ‘접종의 실패’라며 책임을 농가에 돌리고 있다. 농가들이 백신 접종을 꺼리거나 제대로 접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경규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소에서 짜는 젖의 양이 줄어드는 등의 피해를 걱정해 백신을 놓지 않는 농가가 적지 않다”며 “‘백신을 맞히면 소가 유산한다’는 근거 없는 속설도 나돌았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농가가 접종 매뉴얼을 지키지 않아 문제를 키웠다고도 했다. 위성환 농림축산검역본부 구제역진단과장은 “구제역이 발생한 두 농가는 백신을 실온에 두었다가 접종하지 않고 냉장 상태에서 바로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 선진국형 근본 대책 마련해야
하지만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구제역을 막기 위해서는 덴마크 등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 근본적인 방역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세계 최대의 돼지고기 수출국인 덴마크는 1983년 이후 단 한 번도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았다. 덴마크는 농장 입구와 가축들이 있는 축사 사이에 완충지대를 만들어 사람이나 축산 관련 차량이 바이러스를 전파할 가능성을 ‘0’에 가깝게 낮춘다. 농장을 출입하는 사람도 엄격하게 제한한다.
최혜령 herstory@donga.com·김재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