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싱 부활 위해 의기투합한 1980년대 ‘두 태양’ 장정구-유명우
한국 프로복싱의 전설인 장정구(왼쪽)와 유명우가 19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이들은 지난 30여 년간의 복싱 인생을 되돌아보며 침체된 한국 복싱을 살리기 위해 힘을 합치기로 했다. 20대 초반 불같은 펀치와 투지로 세계를 호령했던 천재 복서에서 50대 레전드로 변한 이들에게서 세월의 속도가 느껴진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짱구’ 형을 라이벌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만약 겨뤘다면 무조건 형한테 졌을 거다. 형의 경기 방식은 나하고 안 맞는다. 하하.”(‘작은 들소’ 유명우)
똑같이 저돌적인 파이터였던 두 사람의 스타일은 세월 속에서 달라졌다. 한쪽은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한 치 양보 없는 치열한 승부 근성을, 다른 한쪽은 연륜 속에 쌓인 느긋한 여유와 겸손함을 보였다.
두 사람의 1980년대 후반 전성기는 겹친다. 이들의 맞대결은 최고의 빅 카드로 꼽혔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실제로 붙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이는 여전히 복싱 팬 사이에서 오르내리는 화젯거리다. 두 챔피언은 19일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에서 만나 과거 맞대결이 무산된 배경과 서로의 복싱 인생에 대해 들려주었다.
둘은 서로의 첫인상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장정구보다 2년 늦게 세계 챔피언에 오른 유명우는 “짱구 형은 의리 있고 기운 넘치는 딱 경상도 남자였다. 워낙 세계적인 선수라 말 붙이기가 어려웠다. ‘형에게 잘 배워야겠다’ 그런 마음만 있었다”고 했다. 그러자 장정구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쑥스럽네. 1980년대 초 워커힐호텔에서 명우를 처음 봤다. 완벽하게 경기 전략을 준비하고, 흔들림 없는 복싱을 하는 걸 보고 후배지만 놀라웠다”고 답했다.
체중 조절에 대한 고통도 떠올렸다. 장정구는 “평소 체중이 62.5kg 정도였는데 경기를 앞두고 14kg을 빼야 했다”고 말했다. 유명우도 “감량 때는 물을 마시지 말아야 하는데 그게 제일 안 됐다. 절제를 못 하겠더라. 물 마시면 후회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장정구가 변칙적인 경기 운영을 했다면 유명우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경기 운영을 하면서도 꾸준히 상대를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었다. 그래도 맞대결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질문은 의미 없게 느껴졌다. 어차피 실제 대결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니까. 이와 관련된 모든 상상은 허구일 뿐이다.
두 사람은 상상이 아닌 현실에서 침체된 복싱의 부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장정구는 “8체급을 석권한 매니 파키아오의 필리핀 복싱 열기가 부럽다. 파키아오가 나를 보며 동기 부여를 했다는데 파키아오를 만나도 지금의 한국 복싱을 자랑할 수 없으니 답답하다”고 했다. 유명우는 “복싱 스타가 등장해 돈도 많이 버는 모습을 보며 새로운 신예가 나오는 선순환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복싱 프로모터 일을 하고 있는 유명우는 최근 한국권투위원회(KBC)와 한국권투연맹(KBF)의 통합을 위한 노력의 하나로 22일 열리는 첫 교류전의 성공을 위해 힘을 보태고 있다. 복싱 체육관을 운영하는 장정구도 이 대회의 성공을 위해 흔쾌히 나서기로 했다. 각각 다른 챔피언벨트를 차지했던 두 사람은 이제 복싱 부흥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세우고 있다. 장정구는 덧붙였다. “세상 사람들이 단 한 번이라도 체육관에서 글러브를 끼고 땀을 흘려보게 하고 싶다. 복싱은 나의 모든 것이다. 명우야! 다른 말이 필요 있나?”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