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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서 꿈이 없다고요? 난생처음 맞는 오늘을 즐기세요”

입력 | 2017-01-09 03:00:00

수필집 펴낸 여성학자 박혜란씨




가수 이적의 어머니로도 알려진 여성학자 박혜란 씨. 그는 “늙었다고 꿈도 꿀 수 없고 장기적 목표도 세울 수 없다고 좌절할 게 아니라 오늘을 열심히 살면 되겠다는 생각에 책을 썼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kjk5873@donga.com

 “50대 중반에 노인이 됐단 생각에 ‘늙는 것’에 대한 책을 썼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청춘이었어요. 지금처럼 칠십쯤은 돼야 진짜 늙은 건데….”

 55세에 ‘나이듦에 대하여’, 64세에 ‘다시, 나이듦에 대하여’란 수필집을 발표했던 여성학자 박혜란 씨(71). 가수 이적의 어머니로 잘 알려진 그가 ‘오늘, 난생처음 살아보는 날’이란 제목의 세 번째 ‘나이’ 이야기를 펴냈다.

 이 책도 앞선 책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사를 다룬 경쾌한 글 속에 남녀의 성 문제에 대한 촌철살인을 담고 있다. 전기밥솥 하나 다룰 줄 모르면서 삼시세끼 거한 밥상을 바란다는 둥 남편을 ‘묵사발’로 만드는 위트도 여전하다.

 “언젠가 TV를 보는데 한 출연자가 ‘사람이 절대 살 수 없는 이틀이 있는데, 어제와 내일’이라는 거예요. 우리는 모두 오늘을 살 뿐이고, 어제를 다시 살거나 내일을 앞당겨 살 수는 없다는 거죠.”

 박 씨는 그 순간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누구에게나 오늘 하루하루는 난생처음 맞는 날이잖아요. 그 하루를 열심히 살면 더 좋은 내일이 오겠죠. 늙었다고 꿈도 꿀 수 없고 장기적 목표도 세울 수 없다며 좌절할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오늘을 열심히 살면 되겠단 생각으로 세 번째 책이름을 지었어요.”

 실제 박 씨는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고 했다.

 20대 때는 공부 연애 직장생활로, 전업주부가 된 30대에는 세 아들을 키우느라, 40대에는 늦깎이 공부를 시작해 바빴고, 50, 60대에는 여성학자로 강단과 사회를 누볐다. 그러나 이 중 무엇 하나 계획한 건 없었다고 했다. 그는 “여성학 전공도 어느 날 신문을 보다 관련기사를 보고 우연히 알게 됐다”며 “뭐가 되자고 한 게 아니라 주어진 오늘에 최선을 다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어느덧 인생의 황혼에 도착한 노학자는 누가 봐도 다복해 보였다. 탄탄한 명성, 든든한 남편, 교수 가수 드라마PD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세 아들. 나이가 엇비슷해 서로 돈독한 손자 손녀들….

 박 씨는 현재 우리가 당면한 노년층 문제의 많은 부분이 잘못된 성의식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요새 황혼이혼이 늘잖아요. 난 50대에 남편이 사업에 실패했을 때도 ‘남자만 돈 벌어야 하는 건 아니지’ 하고 내가 돈 벌러 나갔어요. 턱없이 권위를 내세우려 할 때도 ‘가부장제의 틀에서 살아온 사람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죠. 신랑을 이해하면 화나지 않아요. 다툴 일도 없죠. 흔히들 오해하는데 여성학의 적(敵)은 남자가 아니라 가부장제예요. 남자들도 가장이 모든 경제사회적 책임을 떠맡도록 한 가부장제의 피해자입니다. 이런 걸 이해하고 부부가 서로 보듬는다면 황혼이혼을 피할 수 있어요.”

 그는 책에서 ‘우리 모두 페미니스트로!’라고 주장한다. “여성학은 사랑과 상생의 학문이에요. 남자든 여자든 성별의 틀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본연의 모습을 찾도록 도와주죠.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이 높은 이유는 자식과 배우자가 떠난 뒤 삶의 의미를 잃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에요. 내 삶의 의미를 나와 나의 오늘에 두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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