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형권 뉴욕특파원
시인 박노해의 시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이렇게 추모했다. 지역주의 타파, 국민 통합이란 정치적 명분을 내걸고 무모한 도전을 계속하면서 얻은 별명이 ‘바보’였다. 1988년 13대 총선 때 부산에서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통일민주당 후보로 당선됐지만 3당 합당(1990년)을 거부하며 YS와 결별했다. 대세(大勢) 대신 대의(大義)를 따르는 특유의 ‘바보짓’이 본격화됐다. 이른바 ‘호남당의 영남 후보’로 1992년 14대 총선, 1995년 부산시장 선거, 2000년 16대 총선에서 부산에 도전했으나 떨어지고, 떨어지고, 또 떨어졌다.
그는 왜 바보 같은 도전을 계속한 걸까. 승부사이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 기간 그를 지근거리에서 취재했던 기자의 판단이다. 같은 해 1월 그에게 “당신을 정치계에 입문시킨 YS로부터 무엇을 배웠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3당 합당이 YS의 승부수였다면, 부산 도전은 노무현의 승부수였다. 차이는 YS는 민의(民意)에 반하는 합당에 성공해 대세를 만들었지만, 노 전 대통령은 부산에서 계속 실패했지만 국민적 공감을 얻는 데는 성공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외교보좌관,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내고 정부의 전폭적 지원 아래 유엔 사무총장 도전에 성공했던 반기문 전 총장(72)이 이달 중순 귀국한다. 2006년 사무총장 당선자로 미국 뉴욕으로 떠났던 그가 10년 만에 유력한 대권주자로 돌아온다.
반 전 총장이 자신보다 2년 연하지만, 정치는 선배인 노 전 대통령으로부터 어떤 가르침을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반 전 총장의 승부처는 평양이었다.
“특히 제가 직접 관여해 왔던 북한 핵문제 해결과 한반도 평화 유지에 대해서는 사무총장의 권한을 최대한 활용하여 조속한 시일 내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기여하고자 합니다.”(2006년 11월 국회 연설에서)
반 전 총장이나 그의 외교관 출신 측근들의 해명처럼 방북 불발은 전적으로 북한의 잘못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평양 실패’가 노 전 대통령의 ‘부산 실패’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다. 그 실패에선 어떤 감동이나 공감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부형권 뉴욕특파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