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美대선 해킹 의혹’ 新냉전]퇴임 3주 앞두고 꺼낸 對러 제재
미 백악관과 재무부는 29일(현지 시간) 워싱턴의 주미 러시아대사관과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에 근무하는 외교관 35명을 추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뉴욕과 메릴랜드 주에 있는 러시아 정부 소유 시설 2곳을 폐쇄했다. 러시아군 총정보국(GRU), 러시아연방보안국(FSB) 등 5개 기관과 이고리 발렌티노비치 국장을 포함한 GRU 최고위 인사 등 개인 6명에 대한 경제 제재도 단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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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크렘린 궁의 e메일 성명을 통해 “러시아가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대응 방식을 취할 권리가 있지만 무책임한 외교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크렘린 궁은 “현재 미국 행정부가 그런 방식으로 문제를 끝내는 것에 대해 유감”이라며 “푸틴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과 미국인들에게 새해를 축하한다”고 밝혔다. 오바마 행정부와의 극한 대치를 피하는 대신 트럼프 당선인과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내년 1월 20일 퇴임하는 오바마 대통령이 러시아에 대해 이처럼 전례 없는 제재 조치를 내린 것은 해킹 사건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은 물론이고 트럼프 당선인의 친러 외교 노선을 사전에 흔들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당선인은 ‘푸틴 친구’로 통하는 렉스 틸러슨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를 국무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는 등 오바마 정부에서 멀어진 러시아와의 관계 회복을 통해 글로벌 패권을 다투는 중국을 견제하는 새로운 국제 질서를 구상한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미국은 이제 더 크고 더 좋은 일로 넘어가야 할 때”라며 오바마 행정부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하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듯 “나라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다음 주에 정보 당국 관계자들을 만나 이번 사안에 대한 추가 보고를 받을 것”이라고 말해 여지를 남겼다.
이제 관심은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후 이번 조치를 무효화하거나 제재 수위를 낮출 것인지에 쏠리고 있다. 이날 조치는 법률이 아니라 대통령 행정명령인 만큼 트럼프가 마음만 먹으면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연방수사국(FBI) 등 정보기관의 분석에 따른 것인 데다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일각에서도 해킹 사건에 대한 초당적 조사를 주문하고 있어 쉽게 뒤집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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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 황인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