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조를 통해 본 리더십
사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아이템을 구상하는 사람들에게 제일 분통 터지고 끔찍한 상황은 “경험이 있느냐?”고 묻는다거나, “전례가 없어서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올 때다. 새로운 일이나 아이템은 그야말로 처음 하는 시도이기에 어렵고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러한 취지 따윈 팽개쳐 버리고 근거만을 내세워 제안을 거절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조선시대에는 어땠을까. 조선은 예법과 전통을 대단히 중시한 나라였다. 그러니 ‘전례가 없다’는 것처럼 무서운 말이 없었지만 이것이 복지부동이나 책임 회피를 위해 사용되진 않았다. 전례를 따지는 것의 제일 큰 용도는 권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왕이 능을 크게 지으려 한다거나, 총애하는 신하에게 과도한 권력을 몰아주려고 하거나 인기를 위한 정책을 시행하려고 할 때, 신하들이 이를 방지하기 위해 거론하는 것이 “전례가 없다”였다. 그뿐만 아니라 권력가가 중국 사신의 부당한 청탁을 거절하는 방법도 “나는 정말 들어주고 싶은데 전례가 없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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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군주라고 불리는 영조와 정조는 이런 전례 사용의 원칙에 더더욱 철저했다. 전례를 악용하는 사례는 철저히 색출해 금지하고 새로운 전례를 만들어내는 데 더 적극적이었다. 18세기 관리들은 자기들이 편한 대로 ‘행정관행’ ‘조세관행’ ‘행사관행’을 만들었고 그것을 기록해놓은 뒤 전례와 관행을 내세우며 수탈을 일삼았다. 한마디로 전례를 악용하기 일쑤였다. 그러자 영조는 모든 관청에 있는 ‘전례등록(前例謄錄)’, 즉 관청별로 시행되고 있던 관행 기록을 정리한 책을 모두 태워버리게 했다.
정조는 한걸음 더 나아갔다. 과거에 여러 가지 전례가 있는데 그중에서 백성에게 제일 좋은 것을 사용하고, 필요하면 새 법을 빨리 제정해 그것을 새로운 전례로 만들라고 명했다. 1789년(정조 13년)에 사도세자의 무덤을 이장해야 했다. 조선에서는 이런 왕실 행사에 백성들을 동원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정조는 이러한 관행이 전례를 핑계로 백성들을 괴롭히는 처사라며 금지했다. 그 대신 임금을 지불하고 고용하라고 명령했다.
많은 사람이 전례와 경력을 따지는 데는 다 그럴 만한 사정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례를 사용하는 이유와 전례의 목적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전례가 없다’는 말이 편하고 안전하고, 책임을 피하기 위한 것이 돼서는 안 된다.
이제 다시 한 번 전례의 사용 원칙을 재점검해볼 때가 됐다. 전례를 올바로 사용하고, 전례에 의지하기보다는 이를 창조하는 사람이 많이 나올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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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