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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조건희]알면서 왜 물어요

입력 | 2016-12-08 03:00:00


조건희 정책사회부 기자

 건강보험료를 매기는 기준은 참 해괴하다. ‘송파 세 모녀’처럼 생활고에 시달리는 계층에는 월 5만 원이 꼬박꼬박 부과되지만 ‘피부양자’로 등록한 자산가는 불로소득이 연 7900만 원이어도 건보료를 한 푼도 안 낸다. 박근혜 정부는 이런 불합리를 고치겠다며 집권 초부터 기획단을 꾸려 1년 6개월간 논의를 벌였으나 지난해 1월 개편안 발표를 돌연 연기했다. “해를 넘겨 경제 상황이 변했으니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시뮬레이션을 다시 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였다.

 컴퓨터활용능력 2급 수준의 엑셀 실력이면 2주 안에 마쳤을 그 시뮬레이션이 1년 넘게 이어졌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에게 진행 상황을 물어볼 때마다 “알면서 왜 물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생략된 말을 재구성해 보면 ‘시뮬레이션이 덜 된 게 아니라 부과체계 개편에 따라 건보료가 인상될 고소득자의 표심(票心)을 의식한 정부 여당의 미적지근한 태도 때문이라는 걸 전 국민이 아는데 새삼스레 왜 묻느냐’는 정도가 되겠다. 정진엽 복지부 장관도 한 언론 인터뷰에서 “알면서 질문하면 반칙”이라고 했다. 4·13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했다면 시뮬레이션 결과는 정권 교체 후에나 나왔을 공산이 크다.

 야당이 다수를 잡은 올해 5월부터 건보료 개혁 논의에 불이 붙었다. 공청회와 토론회가 이어지고 관련 법안이 여러 건 발의됐다. 건보료를 소득 기준으로 매기고 피부양자 제도를 없애는 게 골자다. 여기에 “정부가 표심을 의식해 부과 체계 개편을 미룬다”는 성상철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의 발언도 불을 붙였다. 복지부는 다음 날 “표심 때문이 아니다”라고 부랴부랴 해명했고, 10월 국정감사에선 “연내에 정부안을 내놓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야당안이 완벽한 건 아니다. 당국이 소득을 파악하고 있는 지역가입자가 절반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소득 중심으로만 건보료를 매기면 오히려 형평성을 해치거나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킬 수 있다. 양승조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을 적용하면 직장가입자 136만9000가구는 건보료를 지금보다 더 내야 하는데, 이들이 개편안을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을지도 고려해야 한다. 피부양자 제도를 없애면 월 100만 원 국민연금이 유일한 소득인 노인에겐 월 6만 원가량의 건보료 부담이 생기지만 농사로 연 1억 원(비과세소득)을 버는 가입자는 건보료가 면제되는 모순도 나타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허점을 보완할 ‘골든타임’을 이달 말로 본다. 올해 안에 정부 여당과 야당의 개편안이 각각 구체화돼야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유권자가 공약의 우열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순실 게이트’가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며 건보료 개혁과 관련된 공청회와 토론회가 줄줄이 취소됐다. 관련 법안들은 10월 말 국회 전체회의에 한 차례 상정된 뒤 아직 자구 심사도 받지 못한 상태다. 일부 국회의원이 지난달 말 “건보료 법안만이라도 법안심사소위원회로 넘기자”며 심사를 추진했지만 “지금이 어느 시국인데…”라는 핀잔에 무산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정감사에서 약속한 대로 이달 말까지 정부안을 내놓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지만 스스로도 자신이 없는 말투다. 내심 반기지는 않을까. 왜 아직 안 됐는지 물으면 이번에도 “알면서 왜 묻느냐”고 답하면 될 테니.

조건희 정책사회부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