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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비극의 공주’ 民意 따라야 살 길 열린다

입력 | 2016-12-07 03:00:00

청와대 나온 27세 여성이 세상물정 어두운 공주였다면 최순실은 꾀바른 시녀
박 대통령 탄핵소추 각오한 듯… 법률적 방어논리로는 민심 돌리지 못한다
불행한 대통령들의 전철 밟지 않도록 정치권 고민할 때 올 것




황호택 논설주간

 박근혜 대통령은 평범한 삶을 살 수 없었던 운명을 갖고 태어났다. 11세 때 아버지를 따라 청와대에 들어가 27세에 천애 ‘고아’가 되어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청와대에서 경호원과 비서에게 둘러싸여 살았던 공주가 바깥세상으로 나왔을 때 일상생활에서도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최순실가(家)의 운전사를 17년 했다는 이가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은) 공주라고 보면 된다. 저 양반(박 대통령)이 참 뭘 모른다”고 말했다. 최순실은 박 대통령과 통화가 끝나고 나면 “아직도 지(박 대통령)가 공주인 줄 아나봐”라는 뒷담화를 했다고 한다.

 공주병은 쉽게 말해 자기가 우월하고 특별하다는 의식이다. 박 대통령이 성장기에 살아온 환경과 교육의 영향도 컸을 것이다. 공주병이 심하면 자기애적(自己愛的) 성격장애가 되지만 정치인이나 특수전문직의 경우 적정량의 자기애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 자기관리에 엄격하고, 매무새가 깔끔하고, 여간해서 타협을 안 하던 박 대통령의 태도는 ‘공주과’의 전형이라고 정신분석학자들은 말한다.

 박 대통령이 공주였다면 최순실은 눈치 빠르고 세상일에 밝은 시녀였다. 최태민의 다섯째 부인의 셋째 딸은 복잡한 가정환경을 인생독본으로 삼아 기민하게 살아가는 처세술을 익혔다. 1979년부터 오랜 세월을 가까이 하며 그는 주변의 자질구레한 일부터 선거자금에 이르기까지 박 대통령에게 도움을 주면서 신뢰를 얻었다. 친남매들과도 사이가 원만하지 않았던 박 대통령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헌신적으로 도와준 최순실은 ‘피보다 진한 물’이 됐다. 윤리도덕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산 최순실은 박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치명적 약점)을 잘 알았고, 37년의 경험을 통해 박 대통령의 어디를 누르면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꿰뚫었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 사건 후 2차 담화문에서 최순실의 국정 농단에 대해 ‘제대로 살피지 못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에게 엄격하지 못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3차 담화문에서는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은 결국 저의 큰 잘못’이라고 밝혔다. 수사와 재판에 대비한 표현 같지만 검찰의 공소장 내용을 보면 ‘주변관리 실패’라고 변명할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넘어섰다. 사악한 시녀에게 의존하다가 비즈니스로 말하면 동업관계, 형사법적으로 말하면 공범관계로 발전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지금부터라도 민심을 악화시키는 오판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지나치게 법률기술적 조언을 따르다간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 현재로선 불리하더라도 민의(民意)를 존중하는 결단을 내림으로써 속죄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박 대통령이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정진석 원내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을 뜯어보면 9일 국회 투표에서 탄핵소추가 가결되는 사태를 각오하고 있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은 “탄핵이 가결되면 결과를 받아들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지만 헌재에서 뒤집기가 무망해졌다고 판단하면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예측하기 어렵다. 탄핵과 사퇴는 명예 측면에서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에서 차이가 크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하원 법사위원회에서 탄핵결의안이 통과되고 나서 하원과 상원 표결에서 이를 저지할 전망이 보이지 않자 사퇴했다. 그리고 닉슨 밑에서 부통령을 지낸 후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닉슨을 사면했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과 달리 형이 확정되지 않으면 사면은 불가능하다. 박 대통령은 퇴임과 함께 수사를 받고 기소될 수밖에 없다. 형이 확정되기까지는 통상 1∼2년이 걸린다. 그때는 민심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져 불명예 퇴진한 대통령을 꼭 교도소에까지 보내야 하느냐는 여론이 생길 수도 있다고 본다.

 노무현 대통령은 수사를 받다가 부엉이바위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지금 박 대통령의 심리상태는 최순실 사건 후 2차 담화문에서 ‘잠을 이루기가 힘들다’고 토로했을 만큼 불안정하다. 평생 피붙이처럼 의지하던 최순실도 교도소에 들어가 있다.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이 교도소살이를 하고 노 대통령은 수사를 받다 자살하고, 여기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그런 전철을 밟는다면 개인의 불행은 물론이거니와 나라의 이미지에도 상처를 입힌다. ‘비극의 공주’ 박 대통령의 탄핵 이후를 놓고 한국 정치가 고민할 시기가 올 것이다.
 
황호택 논설주간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