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웅 교수 ‘고려 귀화 외국인’ 논문
24일 단국대 동양학연구원의 ‘한국사 속의 외래인, 이주와 삶’ 학술회의에 참가한 한시준 원장(앞줄 가운데 뒷짐 진 사람)과 학자들.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제공
김철웅 단국대 교양학부 교수는 단국대 동양학연구원이 최근 개최한 ‘한국사 속의 외래인, 이주와 삶’ 학술회의에서 ‘고려시대 외국인의 이주와 정착’ 논문을 발표했다. 김 교수는 그동안 역사학계가 잘 다루지 않은 고려 귀화 외국인들의 삶을 파헤쳤다.
논문에 따르면 10세기 고려 전기에만 여진족은 480회, 송나라 사람은 200회 이상 한반도를 왕래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고려와 송나라는 200년에 걸쳐 총 90차례(고려→송 60차례, 송→고려 30차례)의 사신 교환이 있었는데, 송나라 상인이 고려에 입국한 횟수는 이보다 많은 130차례에 달했다. 양국의 공식 외교관계보다 사무역의 빈도가 훨씬 높았던 셈이다. 이에 따라 고려로 귀화한 송나라 상인들도 적지 않았다.
반면 거란이나 여진족들에 대해서는 가급적 큰 집단을 이루지 못하게 하고, 내륙이 아닌 북쪽 변방에 우선 배치하는 규제 방식을 취했다. 태조 왕건이 후대 왕들에게 남긴 훈요십조에서 거란에 대한 경계를 강조한 것도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요나라에서 피신한 거란인이 계속 늘고 농업 생산력을 높여야 할 필요가 생기면서 거란족의 내륙 거주도 허용했다.
몽골인과 이슬람교도들의 고려 이주는 송나라와 달리 원나라의 고려 지배에 따른 강요로 시작됐다. 고려후기 제주도로 들어가 말을 키운 몽골인을 지칭한 달달목호(達達牧胡)가 대표적이다. 몽골은 삼별초 토벌을 내걸고 제주도를 직할령으로 삼은 뒤 총독(다루가치)을 파견했다. 이들은 군사 목적에서 몽골 말 160필을 제주도로 들여와 키웠다.
원나라의 제국 확장에 기여해 몽골인 다음의 지배계급으로 군림한 이슬람교도(색목인)들도 고려로 들어와 일부는 평양부윤이나 장군이 됐다. 고려가요 쌍화점 중 “쌍화점에 쌍화 사러 갔더니 회회(回回)아비가 내 손목을 잡더이다”라는 가사는 이슬람교도의 고려 정착을 보여준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