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 300억 출연 윤민창의투자재단 만든 손주은 메가스터디 회장
전국의 수많은 제자를 한마디 말로 휘어잡은 손주은 회장도 어쩔 수 없는 ‘자식 바보’였다. 휴대전화에는 딸 사진이 가득했고, 재산을 물려준다는 아빠에게 아들이 “그걸 내가 왜 받아야 하느냐”고 말했다며 웃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그러나 아빠의 이름 ‘손주은’이 아이들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학교 선생님에게 “무슨 사교육 업체 하나가 시가총액이 2조 원을 넘느냐”는 말을 듣고 온 아이들은 고개를 숙이곤 했다. 아빠는 결국 중학생 딸과 초등학생 아들을 미국으로 보내기로 결심했다.
‘불수능’으로 재수생들을 멘붕에 빠뜨린 수능 다음 날인 18일 서울 서초구 사옥에서 손주은 메가스터디그룹 회장(55)을 만났다. “아들이 지난해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보고 겨우 2년 공부했어요. 수능이 어려웠다는데 결과를 자세히 물어보진 않았어요.”
“늘 강의 첫 시간에 ‘엉덩이로 공부하라’고, ‘공부가 너희를 구원해줄 것’이라고 했거든요. 그 아이들이 좋은 대학 가서 성공하겠다고 얼마나 꿈꿨겠어요. 근데 20대 후반∼30대 중반 제자들이 저성장 시대에 취업도 안 되고 좌절하고 있죠. 저는 그 사이에 돈을 긁어모았는데….” 손 회장이 노트가 칠판인 것처럼 글씨를 써가며 말했다.
손 회장은 “작년 말에 내가 말로만 떠들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는 무조건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큰 자산을 내놓았지만 가족은 토를 달지 않았다. 아내가 “재단 이름을 ‘광윤’으로 하면 더 좋은데…”라고 했던 게 유일했다. 1991년 교통사고를 당해 그해와 이듬해 잃은 아들과 딸의 이름 앞 글자를 한 글자씩 따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손 회장은 재단의 역할을 명확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딸 이름을 택했다. 윤민, ‘백성을 윤택하게 하라’는 뜻에서 그가 손수 지어준 이름.
손 회장은 1987, 1990년 각각 과외와 학원으로 부잣집 애들을 위한 소규모 강의로 돈을 벌었다. 1991년 비극이 있은 후에는 일주일에 60시간씩 강의를 했다. 두 아이에 대한 기억을 지우기 위해서였다. 이어 1993년과 1996년 아이들이 태어나고 안정을 찾았다. 열심히 강의에 나서 큰돈을 번 손 회장은 “한국식 사교육은 끝나야 한다”며 2014년 메가스터디를 매물로 내놓기도 했고, 지난해는 회사를 기존 중고교생 교육 사업과 성인 사업으로 분할했다.
그는 재단을 통해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창업을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무료로 학교에 보급할 계획이다. 그는 17일에 나왔다는 프로그램 초안을 보여줬다. 이전까지와 다른, 신난 목소리였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