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정국]靑-친박 반격에 보수진영 대혼란
‘진박(진짜 친박근혜계)’으로 꼽히는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한 발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선 퇴진’을 거부한 채 정면 돌파에 나선 점과 맞물려 현재 여권 주류의 인식을 대변한 셈이다.
결국 박 대통령이 버티면 언젠가 촛불시위는 사그라지고, 옛 지지층도 다시 결집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깔려 있다는 얘기다. 또 야권과의 전면전이 장기화될수록 ‘최순실 정국 피로감’이 커지면서 내년 대선도 ‘진영 대결’로 치를 수 있다는 속내도 엿보인다. 하지만 청와대 친박의 이런 태도가 오히려 보수의 궤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기엔 야권이 단일대오를 유지하기 힘들 것이란 계산이 깔려 있다. 내년 대선에서 야권이 이길 가능성이 커지면서 역설적으로 야권 공조는 더 어려워진 상황이다. 야권 대선 주자들 간 경쟁이 그만큼 치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장 박 대통령이 제안한 국회 추천 총리 임명을 야권이 주도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박 대통령이 역공을 펼 빌미를 줬다. 야권이 ‘탄핵 카드’를 쉽게 꺼내지 못하는 것도 새누리당 내 비박(비박근혜) 진영의 동참을 자신할 수 없는 탓도 있지만 야권 전체(국회의원 171명)가 찬성할지도 확신할 수 없어서다.
비박 진영이 새누리당을 탈당해 독자 세력화에 나서기 힘들다는 점도 박 대통령과 친박계의 반격이 가능한 요인으로 꼽힌다. 현재 남경필 경기도지사 등 원외에선 탈당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지만 원내만 하더라도 소수 의견에 불과하다. 차기 국회의원 선거가 3년 5개월이나 남아 정국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에서 현역 의원이 ‘선도 탈당’에 나서기 힘들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또 비박 진영 입장에선 막대한 창당 자금도 문제지만 보수 분열의 책임론을 극복하는 것도 쉽지 않은 과제다. 더욱이 비박 진영엔 강력한 대선 주자도 없는 상황이다.
○ “대통령이 죽어야 보수 가치가 살아”
하지만 친박계가 자숙은커녕 정국을 ‘진영 대결 프레임’으로 몰고 가는 데 대해 보수 진영 내부에서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자칫 박 대통령을 살리려다 보수 전체가 ‘부패 기득권 집단’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의 비리를 옹호하면 지금까지 보수가 추구해 온 시장주의나 한미동맹 등의 가치까지 국민에게 외면받을 수 있다”며 “박 대통령이 국민에게 져야 보수 진영에 다시 한번 기회가 온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전면적인 2선 후퇴로 ‘쓸쓸한 퇴장’을 선언해야 보수 진영이 새로운 인물을 중심으로 결집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비박 진영에선 차라리 야권과 ‘탄핵 공조’를 공식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은 “(비박 진영에서) 탄핵을 두고 이견이 없다”고 했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당 대표 시절 당내 비리 인사에게 누구보다 엄격했다”며 “새누리당이 박근혜 정권과 단호히 선을 그어야 보수층에 다시 투표할 명분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배신감과 내년 대선의 위기감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보수 진영이 ‘보수 개혁’을 어떻게 이뤄 낼지 주목된다.
이재명 egija@donga.com·홍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