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그는 관행을 파괴한 창조적인 영상으로 가수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더랬다. 지금 ‘문화계 황태자’로 지목된 차은택 감독 이야기다.
뮤직비디오와 CF 감독으로 2000년대를 주름잡았던 차은택(47) 감독이 정치권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그를 둘러싼 의혹은 지난 20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차은택이 청와대의 비호를 받은 ‘문화계 황태자’”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차 감독은 업계에서 알아주는 인물이었다. 골든디스크 뮤직비디오 감독상을 세 차례나 휩쓸었고, 칸 국제광고제 뉴미디어부문에서 금상도 받았다. 이승환, 빅뱅, 이효리, 싸이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모두 다 그와 작업하길 원했다. ‘뮤비 귀신 소동’을 일으킨 이승환의 ‘애원’을 비롯해 브라운아이즈의 ‘벌써 1년’, 빅뱅의 ‘거짓말’, 이효리의 ‘유고걸’, 싸이의 ‘행오버’도 그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광고계에서도 그의 이력은 화려했다. 톱스타들이 대거 등장하는 휴대전화와 통신사 광고, 주류 광고를 휩쓸었다. 한 편의 영화 같다는 평가를 받으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정우성-전지현의 음료 광고도, 지난 2010년 뉴욕 타임스퀘어에 걸린 MBC 〈무한도전〉의 비빔밥 광고도 모두 그의 작품이었다. 그는 가수 백지영의 히트곡 ‘사랑 안 해’를 작사해 그녀의 재기를 돕기도 했다. 영상을 넘어 문화콘텐츠 제작자로서 독보적인 인물인 셈이다.
차 감독과 청와대의 연결고리를 밝히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최순실 씨가 거론되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확대됐다. 차 감독이 어떻게 최씨와 인연을 쌓았는지 명확히 드러나진 않았지만, 일단 등장한 인물이 박대통령의 핸드백을 만든 고영태 씨다. 그는 펜싱 국가대표 출신으로 2008년 잡화 브랜드를 론칭하며 스포츠와 패션, 연예계에서 두루 인맥을 쌓은 인물이다. 고씨가 최씨의 딸인 정유라 씨의 승마 훈련에 개입하면서 최씨와 막역한 사이가 됐고 최씨에게 차 감독도 소개했다고 전해진다. 일각에선 최씨의 조카인 장유진 씨가 차 감독을 소개했다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
이후 차은택 감독은 10월 5일자 〈매일경제〉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내가 문화 권력자라는 지적은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말은 사실일 수도 있다. 미르 재단에 출자한 재벌기업 관계자는 “차은택은 스스로 실세와 친분을 과시했을 뿐, 진짜 실세는 아니었던 걸로 안다”고 말했다. 권력자들과의 관계를 즐기고 호가호위하기를 좋아해 ‘알아서 챙겨준’ 사람들이 생겨났고, 여기저기서 먼저 이름이 나온다는 것이다.
지난 10월 20일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두 재단(미르 · K스포츠)의 설립은 재계의 주도로 이루어졌고, 설립 취지에 맞게 코리아 프리미엄을 전 세계에 퍼트리는 성과도 거뒀다. 의미 있는 사업에 대한 의혹과 인신공격성 논란은 문화 융성을 위한 기업들의 순수한 참여의지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어느 누구라도 불법행위를 저질렀다면 엄정히 처벌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정감사는 끝났고, 바통은 검찰에 넘겨졌다. 검찰은 미르 · K스포츠 재단의 비선실세 개입 의혹과 관련해 본격적인 수사를 벌일 방침이다. 의혹의 중심에 선 차은택 감독과 최순실 씨도 이번 조사 대상에 포함됐지만, 두 사람은 현재 모두 해외에 체류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 동아일보 사진DB파트 뉴스1 디자인 이지은
editor 정희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