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사설]국정주도 의지 내비친 박 대통령 사과, 민심 역행이다

입력 | 2016-11-05 00:00:00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최순실 씨 관련 사건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과 염려를 끼쳐드린 점 다시 한번 사과한다”고 지난달 25일에 이어 두 번째 대국민 사과를 했다. 매일 새롭게 터져 나오는 ‘최순실 국정농단’을 박 대통령은 미르·K스포츠재단 강제 모금 단 한 건으로 알고 있는지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기고 여러 위법행위까지 저질렀다고 하니 너무나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 모든 사태는 모두 저의 잘못”이라며 검찰 조사는 물론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울먹이기까지 한 박 대통령의 감정적 호소에 안타깝고 측은하다는 생각을 하는 국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사과를 듣다 보면 대기업들로부터 774억 원을 강제 모금해 만든 미르·K스포츠재단이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한 것이고, 이 과정에서 대통령의 비선(秘線) 실세 최 씨가 ‘개인비리’를 저지른 것을 자신은 뒤늦게 알았다는 느낌을 준다.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이 “모든 일은 대통령 지시를 받아서 한 것”이라며 박 대통령과 최 씨 사이에 ‘직거래’가 있다고 밝힌 것을 정면으로 부인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번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최 씨 사태의 본질은 ‘대통령에 의한 비선 실세의 국가권력 사유화’다. 국민은 박 대통령에게 주권을 위임했는데 박 대통령은 선출되지도, 검증되지도 않은 일개 사인(私人) 최 씨에게 연설문 수정부터 문화체육·인사·국방·외교·교육 정책까지 전방위 국정 개입을 허용하고 비호했기에 국민이 분노하고 허탈해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최 씨에게 ‘대통령 권력’을 넘긴 게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초유의 헌법 위반 사건이다.

 어제는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이 최 씨에게 지속적으로 문건을 건넨 정황까지 검찰이 확보했다. 대체 최 씨가 누구이기에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 실세는 진돗개뿐”이라고 최 씨의 출입까지 숨겼는지 궁금한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최 씨에 대해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저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춘 것이 사실”이라고만 설명했다. “심지어 제가 사이비 종교에 빠졌다거나 청와대에서 굿을 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는데 이는 결코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강조했다. 나름대로 억울함을 토로한 것이겠지만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이 문제라는 것처럼 들린다. 박 대통령이 의지했던 최태민 씨의 교리 책엔 그가 ‘영세계의 칙사로서 한국에 파견된 대사와 같다’는 내용도 있다.

 어제 같은 진정성 없는 재탕 사과로 등 돌린 민심이 다시 돌아설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5%(4일 한국갤럽 발표)로 추락해 사실상 국정 운영이 어려울 정도다. 외환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에 금융 주권을 내줬던 김영삼 대통령의 집권 마지막 해 4분기 때의 6%보다도 낮은 역대 최저다. 오늘 서울 광화문광장 등 전국에서 대규모로 열리는 촛불집회에서 국민의 거센 분노가 분출될 개연성도 크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을 강조했던 정치인이 박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의 권위와 도덕성, 정당성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에 국민은 박 대통령에게 더는 국정을 맡길 수 없어 책임총리나 거국중립내각을 요구한 것이다. 그제 김병준 총리 후보자는 자신은 내치(內治), 박 대통령은 외치(外治)를 맡기로 이야기가 됐다며 책임총리로서 사실상 거국내각을 구성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 대통령이 어제 담화에서 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박 대통령이 김 후보자를 통해 국정의 동력을 회복할 생각이라면 대국민 담화에서 직접 인사 배경을 설명하고 김 후보자가 밝힌 내용을 확인해 줬어야 했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박 대통령의 2선 후퇴를 요구하는 주장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데도 박 대통령은 안보·경제 위기를 들어 “국민들께서 맡겨주신 책임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며 박 대통령 자신이 국정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점이다.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은 어제 국회에서 박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을 떼고 2선으로 물러나는 방안에 대해 “나로서는 그런 건의를 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가 6·29선언을 했는데 박 대통령은 오히려 4·13 호헌(護憲)선언으로 국민의 여망을 역행한 것과 같은 형국이다. 박 대통령이 사즉생(死則生)의 각오로 대통령 권한을 내려놓지 않으면 민심은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