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눈길 사로잡는 춤과 연기, 보는 이 가슴 설레

입력 | 2016-11-04 03:00:00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




주인공 오로라 공주(김리회)도 좋지만 마녀 카라보스와 맞서는 라일락 요정을 눈여겨보는 것도 좋다. 출연 시간만 본다면 주인공에 가깝다. 공연 뒤 ‘나에게도 저런 요정이 곁을 지켜준다면…’ 하는 부러움이 들 정도다. 국립발레단 제공

 잘 차려진, 그것도 반찬부터 국까지 모두 맛있는 한정식 한 상 차림이다.

 국립발레단이 3일부터 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무대에 올린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호두까기 인형’, ‘백조의 호수’와 함께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 중 하나다.

 국립발레단이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것은 2004년 러시아 출신의 루돌프 누레예프 버전으로 공연한 이후 12년 만이다. 이번 작품은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예술감독을 지낸 마르시아 하이지 칠레 산티아고발레단 단장이 안무한 버전이다. 약 4시간에 달하는 원작을 150분 정도로 줄였다. 서막과 1막이 이어서 진행되며, 2, 3막도 쉬는 시간 없이 공연된다.

 단원들의 춤은 말할 것도 없이 연기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로라 공주(박슬기 김지영)를 맡은 김리회는 1막의 하이라이트인 ‘로즈 아다지오’ 장면에서 청혼하러 온 왕자 4명의 손을 차례로 잡으며 한 다리로 서서 회전하는 아라베스크 동작을 깔끔하게 소화했다. 어느 왕자를 선택할지 고민하는 눈빛과 표정 연기는 관객까지 설레게 만든다.

 이재우는 마녀 카라보스(이영철 김기완)로 빙의한 듯 열정적 연기로 가장 많은 환호를 받았다. 키 195cm의 거대한 체격은 마녀의 카리스마를 나타내는 데 더없이 어울려 보였다. 표정 연기에도 신경을 많이 쓴 점이 돋보였다. 6월 국내 무대에 올라 큰 호평을 받았던 매슈 본의 ‘잠자는 숲속의 미녀’ 때의 카라보스와 그의 아들 카라독을 맡은 해외 무용수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코르드발레(군무) 단원으로 최근 주역을 꿰차고 있는 박종석은 데지레 왕자(허서명 이재우)를 맡아 안정된 춤을 보여준다. 다만 2일 최종 리허설에서는 긴장한 탓인지 다양한 표정을 짓는 대신 경직된 표정을 공연 내내 가져간 점이 아쉬웠다.

 3막은 종합선물세트다. 미녀와 야수, 라푼첼과 왕자, 개구리 왕자와 공주, 알라딘과 셰에라자드,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등 우리에게 익숙한 동화 속 주인공들이 총출동한다. 연기가 좀 더 강화된 디베르티스망(줄거리와 상관없이 볼거리로 제공되는 여흥 춤)을 선보이며 객석을 즐겁게 만든다. 어린이 관객이라면 시선을 떼기 힘들 듯하다.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잘 짜인 무대다. 커튼이 내려가고 공연장 밖을 나서면서 “재미있게 잘 봤다”는 만족감에 미소가 지어진다. 딱 한 가지 사소한 아쉬움이 든다. 3시간 내내 웃고 즐거웠지만 막상 기억에 남을 만큼의 인상적인 장면이 없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이 공연에서 가면에 가려 얼굴조차 나오지 않지만 박수를 보내야 할 무용수들이 있다. 2막에서 거구의 이재우를 짊어지고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3명의 ‘카라보스 보이’들이다. 5000∼10만 원. 02-587-6181 ★★★★(별 5개 만점)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