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도난 문화재 3808점 회수 17년전 자루당 10만원에 산 25권, 사찰에 2000만원 받고 팔아 ‘보물’ 대명률, 가문 유물로 전시도… 절도범-매매업자 등 18명 입건
조선시대 의학서적인 동의보감 초판본과 중국 명나라의 법률서적인 대명률 등 도난 문화재 3800여 점이 경찰 수사로 회수됐다. 사진은 이번에 회수된 동의보감. 경기북부지방경찰청 제공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전국 곳곳의 사적지나 사찰을 돌며 문화재를 훔친 설모 씨(59)와 절도범 김모 씨(57), 사립박물관장 김모 씨(67), 문화재 매매업자 이모 씨(60) 등 18명을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3일 밝혔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고서류 2758점과 도자기류 312점 등 문화재 총 3808점을 회수했다.
경찰에 따르면 문화재 매매업자인 이 씨는 1999년 절도범 김 씨로부터 사들인 동의보감을 경북에 있는 한 사찰에 2000만 원을 받고 판 혐의다. 조선시대 명의(名醫) 허준이 지은 동의보감은 광해군 5년(1613년)에 총 25권 25책으로 간행된 것이다. 이번에 25권 한 세트가 그대로 회수됐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규장각에 보관된 국보 319-1∼3호의 초판본과 같은 판본이었다. 가치로 따지면 권당 2000만 원 이상, 전체는 수십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의보감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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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지역의 한 사립박물관장인 김 씨는 2012년 장물을 취급하는 이모 씨(69)로부터 대명률을 구입한 뒤 4년간 자신의 박물관에 전시했다. 김 씨는 이를 가문 대대로 내려오던 유물이라고 속여 올해 7월 보물 1906호로 지정받기도 했다. 대명률은 중국 명나라의 법률서적으로 조선의 법률 제정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회수된 대명률은 1389년 명나라에서 편찬된 책을 판각해 인쇄한 것이다. 현재 중국에 남아 있는 1397년 반포본보다 앞서는 것이어서 가치를 매기기도 힘든 희귀본이다.
도굴꾼 설 씨는 2001년 충북 보은군의 한 산성에서 도자기 등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설 씨의 집에서는 삼국시대 도기와 고려시대 청자 등 문화재 562점이 발견됐다. 경찰은 2년에 걸친 수사 끝에 이들을 모두 붙잡고 문화재를 회수했다. 이번 수사에는 70세가 넘은 고령의 도굴꾼과 절도범의 정보 제공이 큰 도움이 됐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을 상대로 ‘어차피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 문화재만이라도 찾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설득해 상당수 문화재를 회수할 수 있었다”며 “적발된 사람들도 모두 문화재 은닉 혐의만 적용돼 구속을 면했다”고 말했다.
의정부=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