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현 국제부 기자
권재현 국제부 기자
여왕은 "240여년에 걸친 자치의 실험이 안 좋게 끝나고 있음을 우리 모두 동의할 것이라 생각한다"며 11월 8일 미국 대선의 투표용지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내면 큰 혼란 없이 미국이 다시 영국 통치하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습니다.
여왕은 브렉시트 과정에서 영국 내각제의 무력함을 목도했음에도 어찌 영국 통치 아래 다시 들어갈 수 있느냐는 반론에 대한 해답도 내놨습니다. "영국 의회는 이 과정에서 아무런 역할도 없을 겁니다. 이는 옛날식 왕정제로 복귀를 뜻합니다. 혹시 찰스 왕세자 때문에 부담스럽다면 걱정 놓으세요. 제 다음은 여러분들이 넋 놓고 좋아하는 윌리엄 왕세손과 그 자식들에게로 왕위를 물려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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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읽으시고도 '진짜?'하고 놀라실 분을 위해 사족을 달겠습니다. 이 기사는 미국의 주간지 뉴요커의 지난달 29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기사를 쓴 사람은 앤디 보로위츠(58). 코미디언이자 영화시나리오 작가로 1998년부터 8년째 뉴요커에 인기절정의 유머 칼럼을 집필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보로위츠는 지난 7월 투표로 브렉시트가 확정되자 "영국인들이 오랜 세월 누려왔던 특권을 스스로 걷어찼다"는 유머 칼럼을 썼습니다. 바로 '미국인 바보라고 놀리기'라는 오래된 스포츠를 더 이상 즐길 수 없게 됐다는 풍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이번엔 e메일 스캔들로 곤욕을 치루고 있는 힐러리 클린턴이나 잇단 성추행 오명을 뒤집어 쓴 도널드 트럼프의 이름을 단 한번도 거명 안하면서 "차라리 식민지 시절 영국 왕정으로 돌아가는 게 더 나을까"라는 풍자를 가한 겁니다. "누가 더 나은가"가 아니라 "누가 덜 못한가"를 고민해야하는 미국유권자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지요.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