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조선 말기의 지사 매천 황현(梅泉 黃玹·1855∼1910) 선생의 ‘이풍헌전(李風憲傳)’입니다. 풍헌은 조선 시대 면(面)이나 리(里)에서 작은 직임을 맡았던 사람인데, 하도 세상에 도둑이 넘치니 너도나도 도둑이 되려고 나서나 봅니다.
광고 로드중
주막에 이르러 큰 사발 세 개에 술을 따라 일제히 마셨다. 술이 비워질 때쯤, 도적의 목은 뒤로 젖혀지고 눈은 사발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때 풍헌이 방망이로 두 도적의 목젖을 냅다 쳤다. 그는 쓰러진 도적들을 묶어서 현(縣)으로 끌고 갔다.
현의 관리는 도적의 돈이 탐이 났다. 게다가 저놈들을 놓아주었다가 다시 잡으면 공도 빼앗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는, 이 풍헌이 양민을 죽이려 했다고 떠들어댔다. 도적들도 눈치를 채고는 몇 차례 심문을 해도 죄를 자복(自服)하지 않았다. 풍헌이 화가 나서 쇠몽둥이를 들고 그들 앞에 서서 말하였다. “자복하지 않으면 뼈를 가루로 만들어 주겠다.” 도적들은 그제야 탄식하며 자복하고 벌을 받았다. 이때부터 이 풍헌의 명성은 자자해졌고, 일대에 숨어 있던 강도들이 모두 혼비백산하여 흩어졌다고 한다.
반전이 거듭되는 이야기. 도적은 처벌했다지만, 저 농간을 부리려던 관리는 또 어찌해야 할지…. 옛날에 있었던 이야기만은 아닌 듯하여 입맛이 씁니다.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