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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참 없는 두산, ‘1인 리더십’ 통했다

입력 | 2016-09-22 09:30:00

두산 김재호. 스포츠동아DB


최근 정규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던 팀들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맏형 리더십’이 존재했다. 2009년 통합우승을 한 KIA엔 이종범이 있었고, 2007년과 2008년에 이어 2010년 우승을 거둔 SK엔 이호준이 버텼다. 2011년부터 정규리그 5연패를 달성한 삼성엔 이승엽이라는 거목이 팀을 받쳤다. 이들은 때로는 뒤에서, 때로는 앞에서 후배들을 이끌며 우승의 발판을 직접 닦아놓곤 했다.

그러나 올 시즌 내내 선두를 달린 두산은 이 지점에서 차이를 보이는 팀이다. 두산은 시즌 대부분을 40대는커녕 30대 후반에 이르는 베테랑 없이 치러냈다. 그러면서도 흔들림 없이 성공적인 시즌을 완성해냈다.

21일 1군 엔트리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특징은 확연히 드러난다. 두산 국내선수들 중 최고참은 33세의 투수 이현승이다. 야수조로 넘어가면 평균연령은 더욱 줄어든다. 31세 내야수 오재원이 가장 맏형일 정도로 연령층이 낮다. 야수조 최고참 홍성흔(39)의 부진과 투수조 맏형 정재훈(36)의 부상으로 경험 많은 베테랑의 빈자리가 더욱 커진 것이 사실이다.

이 같은 맏형 부재 속에서도 두산이 시종일관 끈끈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주장 김재호(31)의 대안책이 주효했다. 김재호는 고참이 팀을 이끄는 맏형 리더십 대신 선수들 각자에게 리더십과 책임감을 부여하는, 이른바 ‘1인 리더십’으로 주장 첫해를 성공적으로 풀어나갔다.

20일 잠실구장에서 만난 김재호는 “다른 팀과 비교해 우리 팀엔 유독 큰형이라 할 수 있는 선배들이 없기에 다른 방법을 생각해냈다”면서 “후배들에게 딱 한 가지를 주문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리더라고 생각해 책임감을 갖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나이와 연차에 상관없이 같은 야구선수로서 책임감을 갖고 경기에 임하자는 뜻이었다.

주장이 강조한 책임감은 결국 희생으로 이어졌다. 그는 “조금 힘들더라도 다 같이 참고 희생한다면 팀이 쉽게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면서 끊임없이 선수단을 독려했다.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 팀을 만드는 일이 그가 주장으로서 가장 먼저 내세운 목표이기도 했다.

선수 각자가 지닌 가치에 대해서도 역설했다. 김재호는 “후배들에게 우리들 중 한 명이 빠졌다고 가정했을 때 팀이 입을 손해를 생각해보자고 얘기하곤 했다”며 선수 각자의 소중함을 일일이 되새기기도 했다. 이를 위해 선수들이 주눅 들지 않게 야구할 수 있도록 덕아웃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일도 놓치지 않고 있다.

주장의 이러한 리더십에 후배들도 동화된 지 오래다. 팀 내 막내급인 박건우(26)는 자신이 직접 겪었던 사례를 회상했다. 그는 “한번은 삼진을 당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덕아웃에 들어왔다. 그러자 (김)재호 형이 ‘너 혼자 야구하냐. 기죽지 말고 어깨 펴라’는 소리를 대뜸 해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말 한마디가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맏형 리더십 대신 1인 리더십으로 성공적인 한해를 완성 중인 두산. 주장 김재호가 바라는 점은 이제 하나다. 이 같은 환경을 가깝게는 가을야구까지, 멀게는 내년과 내후년까지 이어가는 것이다.

고봉준 기자 shuto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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