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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로 질주 트럭, 칼치기 버스… 순찰차 따돌리려 곡예운전도

입력 | 2016-09-12 03:00:00

[교통사고 사망자 2000명 줄이자]<16> 대형차량 폭주를 막자
단속 비웃는 ‘도로의 무법자’




8일 인천항 부근의 한 도로에서 승용차 한 대가 컨테이너 트럭과 짐을 위험하게 실은 화물차 사이를 위태롭게 달리고 있다. 인천=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8일 오전 경기 안산시 영동고속도로 강릉 방면 서안산 나들목 근처를 달리던 차량 앞에 갑자기 거대한 벽이 나타났다. 대형 컨테이너 트럭 2대가 2, 3차로에서 경쟁하듯 속도를 내고 있었고 추월차로인 1차로마저 전세버스가 차지하고 있었다. 전체 차로가 막힌 승용차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속도를 늦췄고, 영문도 모른 채 ‘깜깜이 운전’을 해야 했다. 다른 화물차들이 따라붙으면서 승용차 3, 4대가 순식간에 대형 차량들에 의해 사방이 포위되는 아찔한 장면이 연출됐다. 이들 차량의 간격은 20∼30m에 불과했다.

○ 7500대 적발했지만 ‘반칙 운전’ 여전

최근 ‘대형 차량 공포’가 확산되면서 경찰의 단속이 대폭 강화됐다. 하지만 고속도로 상황은 여전히 심각했다. 본보 취재진이 암행 순찰차를 타고 목격한 대형 차량들은 ‘도로 위 괴물’과 다름없었다. 교통 흐름이나 다른 차량의 안전은 아랑곳 않고 지정 차로 위반, 과속, 난폭운전을 일삼았다. 8일 오전 영동고속도로와 제2경인고속도로에서 각각 1시간 동안 적발된 대형 차량은 12대. 5분에 한 대꼴이었다. 26t 폐기물 운반 차량으로 1차로를 달리다 적발된 운전자 이모 씨(44)는 “앞에서 서행하는 차량을 추월하기 위해 1차로를 달렸다. 운반 시간을 맞추려면 별 수 없다”고 말했다.

제2경인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가 만나는 서창 갈림목에서는 전세버스 한 대가 도로를 횡단하듯 3차로에서 1차로로 끼어들었다. 1, 2차로 차량들은 급하게 속도를 줄여 겨우 사고를 피했다. 버스는 2km가량 달아났지만 결국 암행 순찰차 지시로 갓길에 멈춰 섰다. 운전자 이모 씨(41)는 “3차로가 주행 차로인 화물차들이 2차로를 점령하고 있으니 버스들은 1차로를 달릴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항변했다.

7, 8월 두 달 동안 전국 고속도로에서 지정차로 위반으로 암행 순찰차에 적발된 화물차는 7498대. 전체 단속 건수(1만682건)의 70%가 넘는다. 고속도로순찰대 11지구대 윤종남 경위는 “7월 봉평터널 사고 이후 집중 단속으로 대형 차량의 불법 주행이 많이 줄었지만 요즘도 한 시간에 10대 이상의 차량을 적발한다”고 말했다.

사고가 나면 대형 차량은 승용차보다 치사율이 높다. 지난해 화물차 교통사고 치사율(사고 100건 당 사망자)은 3.4명으로 승용차(1.5명)의 두 배 이상이다. 한국도로공사가 최근 3년간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대형 차량 사고를 분석한 결과 전방 주시 태만(758건), 졸음운전(674건), 과속(431건) 등 운전자 과실에 따른 사고의 치사율은 14.3명에 달했다. 김동국 한국도로공사 사고분석차장은 “특히 과적 차량은 제동 거리가 평균 50% 이상 늘어나기 때문에 사고 피해가 더 커진다”고 말했다.

○ 공포의 중부내륙고속도로

일반 운전자들이 화물차 사고를 가장 주의해야 할 도로는 어디일까. 전문가들은 중부내륙고속도로를 꼽는다. 화물차의 과속 및 난폭 운전이 잦아 다른 운전자들에게 ‘공포의 도로’로 불린다. 지난해 중부내륙고속도로에서 발생한 교통 사망 사고 22건 중 18건(82%)이 화물차가 일으킨 사고였다. 최근 3년 동안 사망 사고가 20건 이상 발생한 주요 고속도로의 화물차 사고 비율도 중부내륙고속도로(68.8%)가 가장 높았다. 이어 남해고속도로(55.6%) 경부고속도로(50.7%) 순이다.

9일 중부내륙고속도로 상주터널 부근에서는 2차로를 지그재그로 달리는 14t 트럭이 발견됐다. 졸음운전이 의심됐다. 암행 순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따라붙자 운전자는 그제야 차선을 넘지 않고 정상 주행을 했다. 졸음운전으로 보이는 대형 차량은 거의 10분 간격으로 발견됐다. 택배 차량 운전사 임모 씨(63)는 “요즘 추석 운송 물량이 밀려 하루 3, 4시간씩 자고 운전대를 잡는다”고 말했다.

○ 600억 원짜리 안전 대책도 무용지물

정부 대책이 헛바퀴 돌면서 대형 차량 사고가 줄지 않고 있다. 속도제한장치가 대표적이다. 국토교통부는 2013년 8월 이후 생산된 3.5t 이상 차량에 속도제한장치를 달도록 했다. 시속 90km 이상 주행을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많은 차량이 이 장치를 불법으로 뗀 채 달리고 있다.

2011년부터 1t 이상 차량에 부착하도록 의무화된 디지털 운행 기록 장치도 마찬가지다. 차량 속도, 분당 엔진 회전수, 차량 좌표 등의 정보가 기록돼 과속, 급차로 변경 등 11개 유형의 위험 운전 행동을 확인할 수 있는 이 장치는 개발 및 보급에 약 600억 원이 들었다.

하지만 교통안전법 개정 당시 운수업계의 반발로 디지털 운행 기록 장치를 근거로 단속이나 처벌은 할 수 없다. 교통사고를 일으켜도 이 장치를 제출해야 할 의무는 없다. 디지털 운행 기록을 사고 예방에 적극 활용하는 선진국과 대조적이다. 독일은 경찰이 예고 없이 단속을 벌여 운행 속도와 주행 거리를 위반한 기록이 확인되면 곧바로 벌금을 부과한다.

김상옥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디지털 운행 기록 장치를 바탕으로 운전자들에게 개별 아이디(ID)를 부여하면 차량과 운전자의 기록을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며 “대형 차량의 주요 사고 원인으로 지목되는 운전자의 무리한 운행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시흥=박성민 min@donga.com / 칠곡=정성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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