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황호택 칼럼]나라를 흔드는 ‘민정수석의 전쟁’

입력 | 2016-08-31 03:00:00

‘넥슨 뇌물’ 검사장 검증 실패와 우 수석 처가 땅 매각 의혹이
이 사건 핵심, 나머지는 곁가지
민정수석이 너무 강하면 그 폐해도 크다
민정수석이 자리 지키며 공격과 방어하는 것은 법치 무시, 국민 우롱




황호택 논설주간

청와대에서 민정수석비서관이 너무 강하면 우리 사회의 저류에 흐르는 민심을 전하는 기능을 못 하고 그 폐해가 커진다는 것을 역대 대통령들도 인식하고 있었다. 전두환 대통령이 검사 출신이 아니고 군 출신인 김용갑 씨를 임기 말 민정수석으로 임명한 것이나, 김대중 대통령이 김성재 목사를 민정수석으로 쓴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은 역대 정부의 어떤 민정수석보다 파워가 막강하다. 국가정보원과 검찰 등 권력기관에 그의 인맥이 심어져 있다는 말이 들린다. 청와대 비서실 안에서도 대통령을 제외하고 그를 견제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 우 수석을 둘러싼 소용돌이가 커지는 것은 그가 민정수석 고유의 기능을 넘어 과도한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우 수석의 서울 강남 처가 땅 매각 의혹을 처음 보도한 신문을 향해 “부패한 기득권 세력”이라고 쏘아붙였는데 과거 언론과의 전쟁을 대통령의 주요 업무로 삼았던 노무현 청와대에서도 듣지 못했던 험구(險口)다. ‘부패한 기득권 세력’을 응징하듯 검사 출신인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국회에서 조선일보 송희영 주필이 대우조선해양 경영진과 전세기를 타고 호화 여행을 했다고 폭로했다. 민정수석을 둘러싼 보수세력의 전쟁에 좌파 미디어들은 이리 때리고 저리 때리며 즐기는 듯하다.

민정수석실 쪽은 우 수석 처가의 강남 땅 거래 의혹이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흘러나간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우 수석은 대검찰청 수사기획관까지 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으나 이 정부 출범 후인 2013년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하자 충격이 컸을 것이다. 당시 검증 과정을 들여다본 사람이 민정수석과 민정비서관 등 4명 정도다. 이 중 한 명이 조 의원이다. 여권은 조 의원이 대선까지 계속 이런 역할을 하며 문재인 후보를 돕지 않을까 하는 걱정스러운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조 의원과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서울대 법대(81학번)와 사법연수원(18기) 동기고 서로 하숙집에 드나들 정도로 가까웠다고 한다. 조 의원은 자신이 우 수석을 검찰에 수사 의뢰한 이 특별감찰관의 배후라는 설에 대해 “청와대가 시선 흐리기용 배후가 필요한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병우를 내주고 다음에는 누구를 내주고…. 이렇게 계속 밀릴 수 없다는 청와대의 인식에는 이런 배경도 작용하고 있다.

민정수석실은 올 3월 25일 공직자 재산공개에서 법조계 1위를 한 진경준 검사장의 156억 원 재산의 대부분이 대학 친구(서울대 86학번)인 김정주 NXC(넥슨 지주회사) 회장으로부터 받은 것인데도 검사장 승진 인사검증에서 이것을 놓쳤다. 그리고 우 수석은 대검 수사기획관을 할때 잘 팔리지 않아 상속세를 못 내고 애를 먹었던 처가 땅을 넥슨에 좋은 시세에 팔았다. 검증 실패와 땅 거래에서 어떤 문제가 없었는지를 살피는 것이 이 사건의 핵심이다. 우 수석은 강남 땅의 계약서를 쓰는 현장에 있었으면서도 처음엔 “없었다”고 거짓말을 했다가 나중에 말 바꾸기를 했다.

검찰은 우 수석이 사는 아파트의 관리사무소를 압수수색하면서 우 수석의 아파트는 빼고 지나갔다. 이 특별감찰관과 통화한 기자의 휴대전화까지 압수하면서 우 수석의 자택을 압수수색하지 않는 것은 검찰이 핵심 의혹을 규명할 의지가 있느냐는 질타를 받을 만하다. 청와대의 민정수석비서관실을 꼭 압수수색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청와대는 지켜주고 보호해줘야 할 부분도 있고, 진 검사장의 인사검증 실패는 이미 드러난 것이다. 그것을 알고 해줬으면 중대한 범죄가 될 수 있고, 모르고 해줬다면 검증 시스템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이 특별감찰관과 송 주필도 사표를 낸 마당에 민정수석이 계속 자리에 눌러앉아 공격과 방어를 한다면 검찰이 어떤 결론을 내도 국민의 신뢰를 얻기는 어렵다. 하지만 대통령이 평소 아끼고 중책을 맡은 참모에게 “그만두라”는 말이 잘 나오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임기 말과 대선이 다가올수록 맹렬히 화살을 쏘아대는 야당과 언론 그리고 비박(비박근혜) 세력으로부터 “내 새끼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마음이 더 간절해질 수 있다.

이런 때일수록 국정 운영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당사자가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주는 결단을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가 하늘이 두 쪽 나도 우 수석을 임기 말까지 끌고 갈 뜻이라면 수사를 받는 동안에라도 업무 정지를 시키는 것이 맞다.
 
황호택 논설주간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