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조내기고구마’ 황외분 대표
황외분 대표가 부산 영도구 웃서발로의 사무실에서 고구마 캐러멜을 소개하고 있다. 이 회사의 올해 매출 목표는 지난해의 갑절 이상인 5억 원이다.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제공
○ 고구마가 바꾼 인생
건축 사업을 하는 남편을 만난 황 대표는 시어머니와 고구마밭을 일궜다. 처음에는 건축 일꾼들과 가족을 먹이려고 시작한 일이었다. 하지만 먹고 남은 고구마가 문제였다. ‘삶은 고구마는 너무 많이 먹어서 물린다’는 말에 손재주가 좋았던 황 대표는 고구마로 조청, 국수를 만들었다. “맛있다”는 주변의 칭찬에 힘입어 이런 제품들을 먹기 좋게 포장해 지역 특산품 축제나 장터에 내다 팔기 시작했다. 고구마된장과 고구마고추장 등 장류도 담가 팔았는데 인기가 좋았다. 사업으로 확대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영도구 전체에 기계를 망가뜨린다는 소문이 나서 모든 방앗간, 공장들이 저를 기피했어요. 다른 구(區)로 가져갔는데 소문이 퍼지는 건 순식간이더라고요.” 황 대표는 우연히 만난 한 공장주와 의기투합해 기계를 직접 개량해 가면서 상품 개발에 성공했다.
부산 영도는 고구마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다. 문익공 조엄 선생이 1764년 일본 쓰시마 섬(대마도)에서 고구마를 처음 들여와 국내 처음으로 재배한 곳이 영도다. 조엄 선생이 고구마를 심었던 바로 그 밭을 지금은 황 대표와 69명의 마을 주민들이 일구고 있다.
○ 마을기업 ‘주식회사 조내기고구마’
황 대표가 유명해지자 여기저기서 제안이 들어왔다. 고구마로 뭐든지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에 2012년 인근의 땅 주인이 ‘우리 땅도 일구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2만3000여 m²에 이르는 넓은 땅이었다. 동사무소에서는 동네 주민이 함께 고구마를 재배하고 황 대표가 이를 모두 수매해 가공하는 방식의 마을기업 형태를 권했다.
“‘국토를 넓게 쓰자’가 모토예요. 고구마 농사를 안 지을 때는 마늘이나 다른 걸 키워야죠.” 황 대표는 한정된 땅이라도 최대한 활용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을기업에 참여한 주민들은 5∼10월에는 고구마를 키우고 다른 시기에는 각자 마늘 등 원하는 작물을 키운다. 처음 마을기업을 시작할 때 5명에 불과했던 주민이 이제 69명으로 늘었다.
고구마 체험농장을 운영해 주말이면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들이 찾아온다. 고구마 전도사로 알려진 황 대표가 초등학교 등에서 고구마의 유래를 강의하기 시작한 후부터 조금씩 오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한 달에 100여 명씩 들른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1인당 5000∼1만 원을 내고 양껏 고구마를 캔다. “고구마도 캐 가고 캐러멜 등도 사서 입소문을 내주니까 좋죠.” 황 대표는 고구마에 농약을 뿌리지 않고 재배한 덕분에 아이들이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고 귀띔했다.
○ 편의점, 면세점 넘어 세계로
상품 개발에 성공한 황 대표의 다음 고민은 판매처였다. 원래 제품을 판매하던 지역축제보다 정해진 공간에서 안정적으로 제품을 팔고 싶었다. 지난해 5월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열린 ‘창조경제 품평회’에 참여한 조내기고구마가 롯데그룹 유통계열사 상품기획 담당자들 눈에 들어왔다.
해외 수출도 순조롭게 진척되고 있다. 지난해 8월 중국 톈진의 롯데백화점과 연계한 한국상품전에 참여해 눈길을 끈 뒤 꾸준히 중국 수출이 진행 중이다. 9월 초에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2016 농수산물 및 우수상품 엑스포’에 참여해 이달 17일 1억 원어치의 제품이 배에 실렸다. 다음 달 러시아에 2억 원가량이 추가로 수출될 예정이다.
황 대표는 군고구마를 가루로 만들어 식사 대용으로 먹을 수 있는 새 제품을 개발해 판매를 준비 중이다. “끼니 챙겨 먹기 힘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일꾼과 가족을 위해 고구마 조청을 만들던 그는 이제 얼굴 모르는 세계인의 식사를 걱정하고 있다.
부산=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