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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년 떠돌던 원혼 이제야 찾았다

입력 | 2016-08-15 03:00:00

[15일 광복 71주년/프리미엄 리포트]사할린 징용 한인 1000여명 명부 새로 발견
日관리들이 조사-작성한 문서 발굴… 조선인 이름 직장 월급 등 적혀있어
기록에 등장 안했던 피해자 드러나




바다 건너 고국 그리며 잠든 넋 ‘바다 건너면 고향인데….’ 러시아 사할린 홀름스크 시의 한 묘지에 묻힌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 김정대 씨(1914∼1966)의 무덤 아래로 푸른 동해가 펼쳐져 있다. 지금은 돌보는 이가 없는 듯 4일 김 씨의 무덤은 사람 키 높이로 자란 풀이 빽빽했다(맨위쪽 사진). 키릴문자로 쓰인 망자의 실제 이름은 ‘종대’ ‘종재’ ‘정재’ 등일 가능성도 있다(맨아래쪽 사진). 홀름스크=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김흥만(金興万), 김용순(金容淳), 김상득(金相得)….’ 한 칸 건너 한 사람, 몇 칸 건너 또 한 사람. 이달 5일 러시아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에 있는 국립사할린역사기록보존소에서 발견한 문서철 속 엷은 미농지는 한 장씩 넘어갈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종이에 쓰인 이름들은 말을 걸고 있었다. 나는 조선인이라고. 71년, 광복된 지 이토록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 이제야 왔냐고.

일본인 이름 사이에 끼인 1000여 명의 조선인 이름은 대부분 일제에 의해 러시아 사할린에 강제로 끌려가 탄광 등에서 중노동에 시달렸고, 광복 뒤에도 끝내 그리던 고향땅을 밟지 못한 이들이다. 강제 동원 피해 신고가 안 돼 있고, 다른 기록에도 등장하지 않아 그동안 기억에서조차 완전히 묻혔던 이들이 상당수다.

동아일보 취재팀과 사할린 강제 동원 문제를 연구해 온 방일권 한국외국어대 연구교수는 사할린역사기록보존소에서 구소련 민정국이 일본인 관리들에게 지시해 작성한 ‘근무원과 노동자 수 조사(勤務員及勞동者數調)’ 문서를 새로 찾아냈다. 이 문서는 총 1346쪽으로 1945년 8∼10월 당시 사할린 11개 군 중 마오카(眞岡) 지청이 관할했던 3개 군 내 모든 사업장의 노동자 명단이 사업장별로 담겼다. 1만여 명의 이름과 직장, 월급 등이 적혀 있는데 조선인은 1000∼2000명으로 추정된다.

이 문서는 사할린 행정구역상 4분의 1에 해당하는 지역의 군수 산업을 포함한 모든 사업장 노동자를 전수조사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나머지 8개 군을 관할했던 3개 지청에서 작성한 문서를 찾아낸다면 일제 패망 뒤 사할린에서 돌아오지 못한 조선인 노동자의 전체 규모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방 교수는 “명부에서 조선인과 강제 동원된 이들을 가려내면 감춰졌던 피해자들을 새로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냉전시대 오갈 수 없었던 구소련 지역의 사할린, 시베리아 등에서 돌아오지 못한 희생자에 대한 조사와 유해 봉환 사업은 이제 걸음마 단계다.

동아일보와 채널A는 국외 강제 동원 사망자들을 조명하기 위해 서(西)시베리아와 사할린, 일본 오키나와 지역을 취재했다. 일본 관동군에 끌려갔다가 일제 패망 뒤 소련에 억류돼 시베리아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사망한 조선인 포로 10명의 매장지는 현지인들의 공동묘지로 변해 있었다.

유즈노사할린스크=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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