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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김재영]습관의 저항

입력 | 2016-08-04 03:00:00


김재영 경제부 기자

국토교통부의 한 사무관은 최근 6개월 동안 틈만 나면 서울 서초구의 공인중개사무소를 들락거렸다. 업무시간에 집을 보러 다닌 건 아니다. 부동산전자계약시스템을 이용해 달라고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전자계약시스템은 중개사무소에서 종이로 작성, 날인하던 부동산 매매·임대 계약을 태블릿PC, 스마트폰 등을 이용한 전자서명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2월부터 서초구에서 시범사업을 시작했고, 이달 말부터 서울 전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사무관은 아파트마다 전단을 돌리고 읍소하다시피 공인중개사들을 설득했다. 하지만 성과는 지극히 저조하다. 시범사업이 시작된 후 반년 동안 전자계약이 성사된 건 3건에 불과하다. 그나마 1건은 시스템 개발 관련자 것이고, 나머지 2건은 한 사람이 이용한 것이다.

정부의 설명을 들어보면 부동산전자계약은 장점이 많다. 시스템에 계약서가 자동으로 저장돼 언제든지 열람할 수 있고 분실 우려도 없다. 계약과 함께 실거래가 신고도 바로 이뤄지며, 확정일자도 즉시 부여돼 별도로 주민센터를 방문해야 하는 불편함도 사라진다. 공인중개사의 사진과 신원이 확인돼 무자격·무등록 불법 중개행위를 막을 수도 있다. 종이 계약서의 위·변조 가능성 역시 차단된다. 전자계약시스템과 연계된 은행과 카드사, 법무법인 등을 이용하면 대출금리는 0.2%포인트가량 낮아지고, 등기비용도 30% 아낄 수 있다.

이처럼 편리하고 안전하며 경제적인 전자계약이 시장에서 외면받는 이유는 무얼까.

일단 낯설다는 점이 걸림돌처럼 보인다. 특히 중년 이상에겐 전자계약이 복잡하고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다. 수억 원의 돈이 오가기 때문에 해킹 등 보안사고에 대한 우려도 있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들은 “실제로 전자계약을 이용해 보면 서면계약보다 복잡하지 않다”며 “보안조치 의무만 다하면 사고가 나도 면책되는 민간기관과 달리, 전자계약은 정부가 책임을 진다”고 설명한다.

전자계약 보급의 핵심 역할을 맡아야 할 공인중개사들의 거센 저항도 악재다. 전자계약으로 수입이 드러나 더 많은 세금을 낼 수 있다는 게 부담이 되고 있다. 그동안 공인중개사들은 등기나 대출 과정에서 법무사와 은행을 끼고 중간 수수료를 받아왔는데 이 수익이 줄어들 여지도 있다.

이쯤에서 소비자라면 놓쳐선 안 될 게 있다. 전자계약은 단순히 계약서를 종이에서 전자스크린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부동산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고, 재산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다 직거래, 금융, 등기, 세무, 이사·청소 등 정보통신기술(ICT)과 결합한 다양한 부동산 서비스의 혜택도 누릴 수 있다. “복잡하고 귀찮으니 종이로 하자”는 공인중개사에게 “전자계약으로 할게요”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때 새로운 시대가 한 발짝 더 빨리 열릴 수 있다. 새로운 것은 불편하게 느껴지지만, 조금만 익숙해지면 예전 것보다 더 많은 이익을 가져온다. 오래된 습관은 약간의 편안함을 빌미로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을 뿐이다.

김재영 경제부 기자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