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으로 화공 약품이 폭발하면서 전소된 경성부청 수도과 분실창고. 동아일보 1929년 8월 7일자.
10년 전의 최고기온이란 1919년 8월 1일에 관측된 37.5도를 말한다. 3·1운동 투옥자들로 북새통을 이루던 서대문형무소의 감방 속에서는 똥통이 끓는다고 작가 심훈이 술회한 기미년 8월의 그 폭염.
1929년의 서울 시가에 퍼진 고약한 냄새의 정체는 유황이었다. 그 진원은 동쪽 광희문 밖 신당리로 밝혀졌다. 거기 경성부청 수도과 분실창고에 보관 중인 화공 약품들이 폭발하면서 누출된 가스였다. 수도 가설 공사에 쓰이는 유황과 초산 등 유독물질이 연일 치솟는 고온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린 것이었다.
‘도시의 길거리에도 넘처흘으는 생명수’라는 사진 설명이 눈에 띈다. 오랜 폭염 끝에 비가 내렸다는 내용이다. 동아일보 1929년 8월 17일자.
‘작열하는 햇발은 땅덩어리를 태워버리려는 듯이 뜨거워 실내의 유황이 자연 발화하여 더운 세상에 더운 화재를 일으키고, 병원마다 일사병 환자가 넘치고, 구루마를 끌던 말과 소가 더위를 먹고 여기저기 자빠지는 등 참극이 연출되었다. 오는 13일이 말복이니 장차 얼마나 더 더우려는가.’(동아일보 1929년 8월 7일자)
20여 일간의 가뭄으로 전국의 농작물은 초토화된 상태였다. 천수답은 이미 마른 지 오래고 저수지마저 일부 바닥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이 모양으로 5, 6일만 가뭄이 더 계속되면 전국의 농작물은 거의 전멸”이라고 총독부 농무과장은 걱정했다. 경상남도의 피해가 특히 심하다고 했다.
‘벌겋게 단 화로같이 뜨거운 세상에서 다만 바라는 것은 비.’ ‘앞으로도 언제나 비가 올는지 알지 못한다.’
이러한 기사 제목들 사이로 경성측후소 관계자의 말이 실렸다.
그리고 열흘쯤 지나 희소식이 들려왔다. 멀리 남태평양으로부터 태풍이 일어 장차 한반도로 접근할 것이라는 예보였다.
‘지난 7일 필리핀 북부 루손 섬에서 생겨난 태풍은 8일 대만 서남 해상에 나타나 11일 대만을 횡단하면서 돌연 방향을 고쳐 북서로 나아가 14일에는 중국 상해의 동남쪽 항주에 접근해 거기서 어름어름하고 있었다. 온 조선이 낙망도 하고 한편으로 기대도 하고 있었는데 15일 아침 태풍은 결연히 그곳을 떠나 조선쪽인 동북으로 출발을 했다고 한다.’(8월 16일자)
태풍은 무섭지만 가뭄과 더위가 더 무서운 것이었다. 태풍 예보는 이어진다.
‘지금은 한 시간에 10킬로 내지 15킬로의 더딘 걸음이나 한 번 바다 위로 나오면 매우 빠를 것이고 더욱이 몽고 방면의 고기압으로 이 태풍은 꼭 조선에 올 것이 틀림없다는데, 그때가 되면 강한 동풍이 불고 큰비가 내려서 넉넉히 장기간의 가뭄 피해를 걷어낼 수 있으며 더위도 끝낼 것이라.’
박윤석 역사칼럼니스트·‘경성 모던타임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