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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포켓몬 잡느라 정신 팔려…국경 넘어가고 절벽서 추락

입력 | 2016-07-30 03:00:00

포켓몬 고 열풍으로 본 캐릭터의 힘

지구촌 곳곳서 잇단 사고로 몸살
인도네시아-사우디선 금지령 내려
일각 “야외활동 늘어나 건강에 도움”




포켓몬 캐릭터의 고향인 일본에서는 포켓몬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젊은이들이 포켓몬 고 게임에 열중하면서 사건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NHK에 따르면 25일 오전 일본 중부의 시가(滋賀) 현 오쓰(大津) 시에서 21세 남성이 게임에 열중하다 3중 추돌 사고를 냈다. 이 남성은 “포켓몬 캐릭터가 근처에 있다는 진동이 울려 포획하려다 신호등에서 멈춘 앞차를 보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24일 기후(岐阜) 현 미노(美濃) 시에서는 브라질 국적의 24세 남성이 포켓몬을 잡겠다며 고속도로에 들어갔다가 경찰에 발견됐다. 이 남성은 “인근 강가에서 바비큐를 하다 게임에 몰두해 고속도로에 들어가게 됐다”라고 밝혔다. 나고야(名古屋) 시에서는 자전거를 타며 게임을 하던 여대생의 가방을 괴한이 빼앗아 가는 사건도 발생했다. 게임이 선보여진 22일에는 교토(京都)에서 대학생이 역대 일왕의 거주지 고쇼(御所) 담장에 근접해 침입 방지용 경보가 울리고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도 빚어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지방자치단체 등은 주의를 촉구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군마(群馬) 현 도미오카(富岡) 시는 세계문화유산인 도미오카 제사장(製絲場) 주변 두 곳에 ‘출입 금지 구역 및 사고에 주의하고 주변 사람을 배려해 달라’는 간판을 설치했다.

구마모토(熊本) 시의 명소인 구마모토 성은 게임 개발에 관여한 닌텐도 측에 성내에 포켓몬이 나타나지 않도록 조치해 달라고 요구했다. 포켓몬을 잡으려는 게이머들이 4월 지진으로 심하게 파손된 성의 진입 금지 구역에 들어가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일부 신사와 사찰도 경내에서 스마트폰 사용 금지를 선언했다.

일본(22일)보다 먼저 포켓몬고 게임이 시작된 미국 등 세계 곳곳에서도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캐나다에 사는 10대 형제는 24일 포켓몬 고를 하던 중 걸어서 불법으로 미국 국경을 넘어가다 미 국경수비대에 붙잡혀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국경수비대는 “두 청소년 모두 포켓몬 고 게임에 빠져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라고 전했다. 18일 인도네시아에서는 포켓몬 고를 하다가 군사기지에 들어간 20대 프랑스인 남성이 체포되기도 했다. 이 남성은 보안 요원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들어갔다가 체포됐고, 수 시간 신문을 받고 나서야 풀려났다.

포켓몬이 아니라 사람을 잡는 참사도 일어나고 있다. 21일 과테말라의 치키물라 시에서는 포켓몬 고의 가상 아이템을 획득하려고 철로 위를 걸어가던 10대 청소년 2명을 향해 지나가던 차에서 갑자기 총격을 가해 한 명은 사망하고 다른 한 명은 중상을 입었다. 13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이고에서는 포켓몬 고에 열중한 남성 두 명이 24m 높이 해안 절벽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었다.

혼란이 가중되자 급기야 ‘포켓몬 고 금지령’도 내려졌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대통령궁이 나서 금지령을 내렸고 사우디아라비아 종교계도 포켓몬 고를 막는 파트와(이슬람 율법 해석)를 선포했다. 11일 미 해병대는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최근 사격장에도 포켓몬 고를 즐기는 게이머들이 등장하고 있다”라며 출입 금지령을 내렸다.

뜻하지 않은 미담도 이어지고 있다. 11일 미국 미시간 주에서는 포켓몬 사냥을 즐기던 한 남성이 여성 음주 운전자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해 사고를 막았다. 12일 캘리포니아 주 풀러턴에서는 포켓몬 고를 하며 걷던 미국 해병대원 2명이 흉기로 행인을 위협하던 남성을 제압해 경찰에 넘기기도 했다.

하루에 많게는 수 km를 이동하며 아이템을 찾아야 하는 포켓몬 고의 특성상 게임을 즐기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우울증 등 정신장애로 외출을 삼갔던 환자들이 자연스레 야외 활동을 하게 돼 활력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미국 최대 정신건강 관련 온라인 네트워크인 ‘사이키 센트럴’의 창립자인 존 그로홀 박사는 12일 “포켓몬 고와 같은 가상현실이 현실의 건강 상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라며 “게임을 즐기러 야외로 나가 상쾌한 공기를 쐬는 행위는 정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장원재 peacechaos@donga.com/황인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