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희 능률교육 콘텐츠개발본부 대리
최근 집 앞에 새로 가게를 낸 백반집이 있다. 하얀 간판에 명조체로 가게 이름 두 글자만 반듯하게 적어놓은 것이 마음에 들어 처음 들렀는데, 거기서 희한한 광경을 목격했다. 주인 아줌마께서 내 옆에 혼자 밥을 먹던 또 다른 남자 손님 테이블에만 자꾸 다른 반찬을 더 놓아 주시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 온 뜨내기손님이라 이렇게 대하고 저 남자 손님은 단골이라 융숭한 대접을 한다고 봤지만 추가로 놓인 반찬들이 특별식이 아니어서 궁금해졌다.
“저번에 보니 익은 김치를 더 잘 먹더라” 하시며 김치보시기를 하나 더 놓으시곤 “아차차, 멸치 조린 것도 있어” 하시며 절반이나 비운 밥공기 옆에 그걸 갖다 주시더니, 급기야 밥숟갈을 놓으려는데 “내 정신 좀 봐, 들기름 발라 새로 구운 김 준다는 게” 하시며 다 먹은 밥상에 결국 김을 내어 오셨다. 처음엔 조카나 아들쯤 되나 했는데 대화를 들어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아 도대체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건가 싶어 자꾸만 눈길이 갔다.
주인아줌마는 빙긋이 웃으시며 반찬 그릇을 내미셨다. 곧이어 “좋아하는 반찬 있어요? 금방 되는 거면 해줄게” 하고 덧붙이셨다. 나 역시 식사를 거의 마쳐갈 즈음이라 정중히 사양했다. 그 대신 이 희한한 상황에 대해 더 여쭈어 보았다.
주인아줌마는 평생을 집에서 살림만 하던 ‘솥뚜껑 운전사’였는데 최근에 기회가 닿아 생전 처음으로 장사라는 걸 하시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막상 백반집을 열고 보니 장사라는 것이 만만치 않으셨단다. “음식 팔아 떼돈 번다는 이야기는 옛말”이라며 몸은 고되고 수지는 맞지 않아 후회도 많이 하셨다고 담담히 고백하셨다. 그러다가 당신 나름의 장사 철학을 세우셨는데 바로 ‘한 끼 잘 때우고 가는 식당’이었다고 한다.
한 테이블이라도 손님을 더 받으려고 아등바등하다 보니 음식은 소홀해지고 위생도 문제가 생겨 걱정이 시작되었고, 그 와중에 ‘혼밥’하러(혼자 밥 먹으러) 오는 젊은 사람들이 마치 타국에 있는 당신의 아들처럼 짠한 마음이 드셨다고 했다. 그런 생각이 점점 깊어지자 얼마를 벌든 기쁘게 밥을 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누가 오든 ‘끼니를 잘 때웠다’고 말할 수 있는 식당을 만들겠노라 결심하신 것이다.
그러고 나선 수저는 꼭 끓는 물에 세 번 삶아서 마른 행주로 닦아 집에서 살림을 살 듯 가게를 정돈했고, 콩자반을 좋아하는 손님에겐 꼭 그것을 내어 드리는 고집을 부렸으며, 밥 같은 밥은 여기서 먹는 게 전부일 젊은이들에겐 대단한 요리는 아니지만 밑반찬 하나라도 더 해주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식당을 운영하자 자연스레 입소문이 나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생겼다. 하지만 굳이 다 손님으로 받지 않고 능력이 되는 만큼만 팔고 나머지 사람들은 돌려보내신다고 한다. 그래야 지금의 이 마음으로 오랫동안 장사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란다.
주인아줌마처럼 자신이 하는 일에 철학을 가지고 진심으로 대하면 스스로뿐만 아니라 상대도 행복해질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괜찮은 밥집이, 동네가, 사회가, 나라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꿈에 잠시나마 마음이 부풀었다.
우지희 능률교육 콘텐츠개발본부 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