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희 싱가포르 리퍼블릭 폴리테크닉대 교수
싱가포르 국부로 존경받는 리콴유가 싱가포르 사회에 남긴 가장 큰 정신적 유산 중 하나는 바로 능력주의다. 능력주의는 한 국가가 보유하고 있는 부와 권력 등의 사회적 재화를 출생 배경을 떠나 오롯이 개인적 능력에 따라 공평하게 분배하자는 이념이다. 이것은 서울 정도 크기의 작은 중계무역항을 세계에서 손꼽히는 도시국가로 탈바꿈시킨 원동력이었다. 작은 국토에 사람이 전부인 도시국가에서 경제 성장과 사회 발전을 위해 똑똑하고 양질의 교육을 받은 소수 엘리트들의 능력이 필요하게 되었고, 결국 능력주의의 혜택은 싱가포르의 소수 엘리트들에게만 돌아가는 전유물이 되고 말았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싱가포르 정부는 최근 99%의 민중을 제대로 먹여 살리기 위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다. 싱가포르는 ‘스킬스 퓨처 싱가포르(SkillsFuture Singapore)’라는 범국가적 차원의 어젠다를 발표하며, 개인의 잠재적인 전문성과 기술을 찾아 평생에 걸쳐 이를 발전시키는 새로운 능력주의를 설파했다. 비뚤어진 엘리트 의식과 신분제 공고화를 타파하기 위한 정부의 대대적 조치로 해석된다.
정부 입장에서는 싱가포르 국가 경제를 한 단계 격상시키는 데 필요한 기술과 능력을 개발시켜 해당 분야의 인재 풀을 만들고, 99% 민중의 입장에서는 자신만의 전문성을 갈고 닦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기존의 싱가포르 능력주의는 대한민국과 닮아있는 듯하다.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이에 대처하는 정부의 사고와 행동이다. 99%에게 죽지 않을 만큼의 먹이만 던져주는 것이 아닌,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99%를 더욱 성장시키고 그들에게 사회적 역할을 주기 위한 정책을 생각해낸다. 최고 정치권력들이 발 벗고 나서 국민의 의견을 청취한다. 싱가포르는 우리나라와 달리 다인종, 다민족 국가인 만큼 다양한 ‘수저의 색깔’이 있다. 하지만 수저의 외양적인 모습(신분)을 강조하기보다는 그 수저가 음식을 더욱 효율적으로 잘 뜰 수 있게끔(능력) 도와주려는 정부의 사고와 행동은 우리가 눈여겨볼 만하다.
김창희 싱가포르 리퍼블릭 폴리테크닉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