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의 행복, 놀 때보다 일할 때 더 느껴 한국 직장인, 가족-일-개인 順으로 중시 ‘열심히 일한 당신’의 휴가에 개성이 있으면 더 행복할 듯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요즘 세계적으로 화두가 되고 있는 ‘일과 삶의 균형(work life balance)’이란 개념 속엔 우리에게 소개된 ‘일 가정 양립’이란 의미보다 더욱 포괄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곧 일과 삶의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은, 양질의 일자리(decent work)를 가진 상태에서 부모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건강한 가족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삶의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도록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질 것이 포함된다.
야근에, 회식에, 장시간 노동에, 구조조정의 압력에 ‘저녁이 있는 삶’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하는 우리네에겐 일과 삶의 균형이란 구호가 다소 사치스럽게 들리는 듯도 하다. 최근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일과 가족 그리고 개인, 세 개의 선택지를 제시하고, 이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역은 어디인지 물었다. 그 결과 가족이라 답한 응답자가 41.0%로 가장 높았고 다음은 일이라 답한 응답자가 37.2%로 뒤를 이었으나, 나 자신이라 답한 응답자는 21.8%에 머물러 개인주의적 성향이 뚜렷한 서구와는 분명히 차별화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이 대목에서 잠시 함께 새겨볼 만한 사실이 있다. 서구의 경우 일-가족-개인 중 개인의 중요성에 대한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음은 물론이요, 그런 만큼 자신의 삶 속에서 재충전을 위한 투자 또한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뿐만 아니라 일과 여가의 균형을 유지하는 가운데 행복과 만족을 느끼는 빈도가 매우 높게 나타난다는 점 또한 기억할 일이다. 이제 본격적인 휴가철의 시작을 앞두고 있다. 올해도 예외 없이 인천공항은 해외여행객으로 북적일 것이고, 유명 휴양지마다 어디가 산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모를 인파로 뒤덮일 것이다. 고속도로 곳곳에서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는 뉴스가 연일 등장할 것이 확실하고, 예의 바가지요금 횡포에 쓰레기 더미로 뒤덮인 휴가지 풍경 또한 뉴스의 단골 메뉴가 될 것이다.
그러노라니 너나없이 떠난 휴가에서 돌아올 때면 마음은 짜증으로 넘쳐나고 몸은 피곤함에 지쳐버리는 경우가 우리네 휴가의 단골 풍경이 된 건 아니겠는지. 정작 ‘열심히 일한 당신’이 떠난 곳은 자유로움과 여유로움을 만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 신용카드 소비와 쇼핑에 몰입하느라 그저 분주했던 경험과 번잡한 기억만 남는 건 아니겠는지.
그보다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일상의 지리멸렬한 관성에서 벗어나 진정 쉬어 갈 수 있는 여유로운 휴가, 무의미함 내지 무력감에서 탈출하여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삶의 방향감각을 다시금 확인해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휴가, 친구 따라 강남 가듯 남들 하는 대로 모방하는 개성 없는 휴가보다는 소박하지만 나만의 스토리가 담길 진정성 있는 휴가를 직접 구상해 봄은 어떨는지.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