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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들, 선수의 친인척까지 꿰뚫고 ‘검은 유혹’

입력 | 2016-07-22 03:00:00

[프로야구 승부조작 파문]진화하는 승부조작 접근 실태




창원지방검찰청은 21일 브로커와 짜고 고의 볼넷을 던지는 등의 방법으로 승부 조작을 한 뒤 금품을 받은 혐의(국민체육진흥법 위반)로 프로야구 NC의 이태양(23)을 불구속 기소하고 브로커 조모 씨(36)를 구속 기소했다. 또 조 씨에게 승부 조작을 제안하고, 이태양을 조 씨에게 소개해 준 국군체육부대(상무) 소속 문우람(24)에 대해선 군 검찰로 사건을 넘겼다. 조 씨로부터 얻은 정보를 이용해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에서 수익을 올린 최모 씨(36)도 불구속 기소했다.

이번 승부 조작 사건은 이태양 등을 적발하는 데 그쳤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브로커들은 아예 선수의 가정형편은 물론이고 친인척까지 리스트를 만들어 약점을 파고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 선수 가정형편까지 파악


승부 조작의 핵심 고리인 브로커들에는 대체로 은퇴한 선수 출신이 많다. 여기에 스포츠 관련 회사나 에이전트사 관계자로 위장해 경기장에 나타나는 브로커들도 있다. 과거에는 주로 조직폭력배나 유흥업소 관계자들이 직접 브로커로 나섰으나, 신분 노출 등으로 전주(錢主)나 도박사이트 베팅업자가 선수 출신 브로커를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조폭 출신의 베팅업자가 여러 브로커에게 각자 1인 사업자등록을 해준 사례도 있다.

4년 전 서울의 한 사립대 야구부를 졸업한 A 씨(은퇴)는 “야구를 같이 했던 선배로부터 브로커 일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며 “승부 조작에 관심 있는 현역 선수 5명을 접촉해 성공하면 개인당 1000만 원씩 5000만 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아예 명단을 주고 고교 동기나 친한 프로 선수들을 고르라고 했다”고 말했다. A 씨는 “브로커 조직 사이에도 인맥이 넓은 브로커들을 데려오려는 경쟁이 치열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브로커들은 연봉이 상대적으로 적고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유흥에 관심이 많은 젊은 선수들을 주로 승부 조작 대상으로 삼는다. 일부 브로커 조직은 선수는 물론이고 선수의 사촌까지 가정환경이나 유흥 성향, 여성 연예인 취향을 분류해 리스트를 만들고, 선수별 관리팀을 두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흥업소를 선호하는 선수들에게는 아예 유흥업소 출입 전용 카드를 만들어 주는 브로커도 있다.

한 서울 지역 고교 야구팀의 감독은 “1, 2군을 오가는 선수들 중 경제적으로 어려운 선수가 브로커들의 주 표적”이라며 “의도적으로 접근한 뒤 돈을 빌려주거나, 젊은 선수들의 경우 여성 연예인을 소개해 주는 등의 방식으로 환심을 산 뒤 승부 조작을 요구하거나 승부 조작을 할 동료 선수를 물색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스포츠 분쟁 전문 변호사인 장달영 변호사는 “최근 베팅업자와 브로커들은 승부 조작 대상 선수들을 고를 때 약점을 잡고 협박을 하면서도, 수익 배분에서는 많은 배려를 해주고 편의를 봐주는 등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수들이 쉽게 유혹에 빠지거나 한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이 같은 오랜 유대관계와 브로커에게 잡힌 약점, 여기에 최근에는 승부 조작에 실패해도 변상을 하지 않는 새로운 조건 등이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다. 야구계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승부 조작에 실패하면 변상을 요구했지만, 요즘은 승부 조작 선수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관계를 오래 지속하기 위해 변상 조건을 걸지 않는 브로커들이 많다”고 전했다.

○ 알고도 못 막은 구단과 KBO


2012년 승부 조작 사태 이후 이를 근절하겠다던 KBO나 구단들의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매년 프로에 입단하는 신인 선수들에게 불법 도박, 승부 조작 범죄에 대한 유해성을 알리는 교육을 실시했으나 효과는 미미했다.

이 때문에 승부 조작 타깃으로 노출 가능성이 큰 저연봉 신인급 선발 투수들에 대한 맞춤 관리와 브로커들에 대한 철저한 감시, 신고 체계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농구연맹(KBL)은 2013년부터 승부 조작 사례를 신고한 선수에 대해 포상금 1억 원을 주고 있다. 한국배구연맹은 2014년 한 브로커가 선수에게 접근하는 사실을 미리 알고 구단에 알려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한 수도권 대학 야구팀 감독은 “중고교 선수에게 인성 사회 교육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KBO 차원에서 부모와 선수가 함께 교육을 받게 하거나 검찰·경찰, 국가인권위원회 관련 부서 등과 협조해 젊은 선수들과 기관 관계자들 간의 ‘멘토링’을 활성화하는 방안도 논의해 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KBO나 구단들이 수사 기관과 협조해 승부 조작 등으로 법적 처벌을 받은 브로커들의 리스트를 선수들에게 제공하거나 은퇴 선수를 중심으로 승부 조작 전문 감시단을 발족시켜야 한다는 아이디어도 나오고 있다.
 
유재영 elegant@donga.com / 창원=강성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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