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法 필요하지만 이대론 안된다]<5>권력비리 잡아낼 그물 더 촘촘하게
후배들은 그를 “사업가로 성공하고 선후배 경조사도 두루 챙기며 아낌없이 베푸는 존경스러운 분”이라며 극찬한다. 하지만 A 씨의 속내는 다르다. ‘장차 힘 있는 기관의 간부 자리에 오르거나, 유력 정치인의 측근이 될 수 있는 사람들과 오랜 기간 ‘보험’처럼 쌓아올린 인맥이 언젠가 큰 힘이 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돼도 이런 ‘보험용 관리’는 법 그물망에서 빠져나가기 쉽다. 직무 관련성이 없다면 1회 100만 원 이하, 연간 300만 원 이하의 식사 대접, 선물, 경조사비는 허용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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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악 비리 뿌리 뽑으려면
실제 세간을 뒤흔들었던 진승현 MCI코리아 부회장의 정관계 로비나 ‘박연차 게이트’ 등은 모두 관련자들이 전현직 대통령 친인척을 비롯한 다양한 정관계 인사들과 오랫동안 친분을 쌓으며 ‘대가성 없이’ 금품을 건넨 사건들이다. 상습 도박 혐의로 지난해 실형을 선고받은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역시 재판 과정에서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의 인맥을 활용하려 한 점이 논란이 됐다.
물론 대가성 없이도 처벌이 가능하도록 한 김영란법의 규정은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직무 관련성 없음’이라는 대목은 구멍으로 남을 수 있다. ‘동향, 동문 선후배’식의 외피로 포장한 만남을 통해 1회 100만 원 이내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접대할 경우 법망을 벗어난 ‘스폰서’ 관계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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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정치권이 ‘김영란법으로 부정부패가 일소될 것’이라는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키면서 정작 권력형 비리 척결을 위한 숙원 대책들을 어물쩍 외면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을 비롯해 대통령 친인척, 고위공직자, 국회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부패 방지 대책들은 김영란법 시행과 상관없이 계속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적용 대상자를 보다 구체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 적용 대상자를 명확히 해 ‘화력’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부정부패가 사회 전반에 걸쳐 구조적으로 얽혀 있다 보니 일부는 ‘부정부패=정부’라고 생각할 정도”라며 “정부의 확고한 실행 의지가 일반인의 신뢰를 얻는 첩경”이라고 말했다.
○ 민간의 자정 노력 동반돼야
김영란법 시행을 계기로 민간에 만연한 비리나 ‘갑(甲)질’ 관행에 대한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기업 간 구매나 납품, 하청 등의 과정에서 이뤄지는 은밀한 리베이트나 뇌물 상납 같은 행태는 김영란법의 ‘그물’로는 처벌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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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 한국반부패정책학회장은 “처벌은 단기적 처방일 뿐이므로 김영란법 시행을 계기로 국민 전체의 가치관과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김민·김창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