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잘 지내나요?/앨리 러셀 혹실드 지음/이계순 옮김/336쪽·1만8000원·이매진
가족과 잘 살기 위해 일하지만 아이와 놀기를 미루고, 생일 파티 준비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등 정작 가족이 함께 행복을 누리는 시간은 유보하는 경우가 많다. 과연 무엇을 위해 참고 견디고 미루는 걸까. 빈센트 반 고흐의 ‘첫 걸음마’.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사로즈 남편의 월급은 25달러(약 2만9000원)다. 인도에서 대리모 사업 거래액은 한 해에 4억550만 달러(약 5278억 원)에 이른다. 미국, 캐나다 등 소득이 높은 나라 사람들이 주 고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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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사회학과 명예교수로, 1983년 펴낸 ‘감정노동’을 통해 인간, 특히 여성의 감정이 상품화되는 현실을 갈파했던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 가족이 지탱되는 구조를 분석한다.
가사 도우미, 아이 및 노인 돌보미, 웨딩 플래너는 이미 익숙하다. 연애 방법을 지도해주는 러브 코치, 파티 플래너, 정리 컨설턴트, 육아 설계사, 아동 배변 훈련가까지 가족의 기능을 대신하는 직업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가족의 역할, 나아가 개인의 삶이 시장화된 것이다. 가정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더 바빠졌다.
저자는 ‘가정의 시장화’가 가속화되면서 중남미, 동남아시아 등의 여성들이 가사 및 간병 도우미를 하기 위해 미국, 유럽, 홍콩으로 대거 이동하는 현상과 파장에도 주목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0년 기준으로 필리핀은 국내총생산(GDP)의 12%, 아이티는 15%, 네팔은 23%를 해외에서 보낸 송금이 차지했다. 남겨진 아이들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에 굶주리고 때때로 분노하며 지낸다. 이주 여성들 역시 자식 보고픈 마음을 꾹꾹 누른 채 대신 고용주의 아이에게 정성을 쏟아붓는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그 결과 과연 행복한가. 국가 간 빈부격차 확대, 맞벌이 증가 등 여러 요인이 맞물려 벌어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란 쉽지 않다. 저자는 자신과 다른 처지에 있는 이들의 입장에 서서 공감해 보라고 제안한다. 고개는 끄덕여지지만 피부에 금방 와 닿지는 않는다. 시장화된 가족과 개인의 삶에 대해 만만치 않은 무게의 질문을 던졌다는 것에 이 책의 의미를 찾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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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아이를 몇 시간 맡기거나 입원한 아버지의 머리를 감기는 등 잠깐 동안의 일도 처리하려면 돈을 지불해야 하기에, 더 악착같이 벌어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일단 서로가 조금씩 보듬고 기대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가족의 생활을 공개해야 하고 이웃 혹은 친구 간에 어느 정도의 간섭이나 오지랖을 받아들일 각오는 해야겠지만 말이다. 원제는 ‘So How’s the Family?’.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