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살기로 진상 밝혀내겠다” “우리 아들 잘 살다 갔구나…”
생전 김홍영 검사의 모습.
2년 차 젊은 검사의 죽음을 두고 사건 초기에는 업무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 보도가 있었으나, 이후 유족이 대검찰청과 청와대에 탄원서를 내면서 상사의 폭언과 폭행이 있었다고 주장해 논란이 커졌다.
책임감 있는 검사이자 후배를 위할 줄 아는 선배, 멋진 아들이던 그가 고민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몇몇은 그의 죽음을 두고 “너무 착해서 상사에게 분노를 표출하기보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쪽을 택한 게 아닐까”라며 안타까워했다.
6월 초 대검찰청 감찰본부는 해당 사건에 대해 서울남부지검에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7월 2일부터는 대검찰청 감찰본부가 나섰다. 사건이 발생한 지 40여 일이 지나서야 시작된 ‘뒷북’ 조사다.
김씨는 “집사람도 저도 건강이 좋지 않기도 하고 검찰 측 조치가 어떻게 나올지 지켜보는 상황”이라며 기자와 만나서 얘기하는 것은 정중히 거절했다. 김씨는 “이제 막 조사를 시작했는데 결과가 금방 나오겠느냐. 시일이 걸리겠지만 이달 안에는 결과가 나오지 않겠느냐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일단 검찰 측에서 어떻게 나올지,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당장 어떤 행동을 해야겠다는 계획은 없어요. 그저 죽기 살기로 진상을 밝혀내야겠다는 마음밖에는 없습니다.”
학창 시절 김씨의 모습. 동기들에 따르면 그는 명랑하고 유쾌한 성격에 축구 등 운동을 좋아했다고 한다.
7월 5일 김 검사의 사법연수원 41기 동기들은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동기회는 이날 대검 감찰본부에 진상규명 요구 성명서도 제출했다. 여기에는 그의 동기 712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 중 405명은 실명을 밝혔다. 단체 활동에 제약이 있는 현직 판사와 검사까지 그의 죽음에 대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고 여겨 서명에 동참한 것이다.
“국가의 정의를 바로잡아야 할 검사가 부하들에게 부정의를 행사하고, 나아가 부하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면 어찌 대한민국 정의 수호라는 공무를 수행할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 아들의 죽음은 국가의 책임입니다.” 유족이 대검찰청과 청와대에 보낸 탄원서 내용 중 일부다.
7월 6일 김 검사의 누나 김민주 씨는 C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동생이 목숨을 끊은 후로 부장으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의 전화나 문자메시지 한 통 받지 못했다”고 말한 바 있다.
“6월 말부터 사건이 언론에 불거진 이후 아무런 연락이 없습니다. 찾아가는 건 쉽지도 않을뿐더러 우리가 찾아갈 이유도 없죠. 통화해본 적도 없습니다. 집사람이 너무 애통해하다 보니 문자를 몇 차례 보냈던 모양인데, 답이 없었습니다.”
김 검사의 자취방. 화이트보드에 운동 계획과 함께 ‘음주 NO, 담배 NO’라는 문구가 적혔다.
김 검사는 지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MBN이 공개한 김 검사와 후배 검사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면 부장 검사의 술자리 호출에 김 검사가 ‘모두 퇴근했다’며 후배들을 감싸는 대목이 나온다.
김씨는 “700명 넘는 동기들이 서명에 동참한 걸 보면서 ‘우리 아들이 그래도 잘 살았구나’ 생각했다”고 말하다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았다.
“사실 현직에 있는 판검사들이 서명에 참여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도 나서서 해주는 걸 보면서 부질없지만 스스로 위로했어요. 그래도 우리 아들이 참 잘 살다가 갔구나…. 아들과 잘 어울리던 몇몇 후배는 ‘세상에 그런 선배가 또 없었다’고 이야기도 해 주고 울기도 하고요.”
“아들이 책임감이나 정의감이 제가 볼 때는 다른 사람보다 강한 편이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뭐 대단한 거라고, 그만두고 1~2년 쉬었다가 다른 일 했으면 됐을 텐데….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현재 건강 상태를 묻는 기자에게 “뭘 먹어도 돌 씹는 것 같은 상태”라던 김씨는 “아들이 늘 자랑스러웠고, 아들을 보면서 검사가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검사는 상당한 자기 소신과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고, 아들이 일하는 걸 보며 그렇게 생각했어요. 정당하고, 정의감이 남다르던 아이가 검사가 되는 걸 보며 참 좋은 일을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는데, 한두 사람의 행위 때문에…. 부하 직원에게 비인격적인 행동을 하고, 여러 가지로 업무 스트레스를 주며 괴롭히는 사람이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기관에 있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