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논설위원
50대 서청원, 의장을 놓치다
그로부터 10년 뒤. 다시 마주 앉은 박근혜 대선후보. 주위엔 수많은 보좌진이 있었다. 정치부장으로서 박 후보를 인터뷰하는 자리였다. 유력 후보를 처음 인터뷰하기 위해선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했다. 박 후보는 10년 새 대세론의 이회창계보다, 전임 이명박 대통령의 친이계보다 훨씬 단단한 친박계를 구축했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울 듯, 친박계가 이제 쇠락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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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그는 50대였던 2000년에 국회의장을 손에 쥘 뻔했다. 20대 국회 후반기 의장직에 대한 미련을 버렸을 리 만무하다. 당시 5선의 그는 민주당 이만섭 의원과 의장직을 놓고 자유투표로 겨뤘다. 한나라당이 제1당인 여소야대(與小野大)임에도 8표 차로 석패했다. 당내 경선에서 그가 이겼던 박관용 의원은 다음 국회의장이 됐다. 이번에 ‘친박 대표’로 낙인찍히면 차기 의장직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친박계가 쇠락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수장인 박 대통령이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총선 전에는 공천 때문에 박 대통령에게 매달렸고, 그것이 친박의 구심력이었다. 총선은 끝났고, 1년 7개월 남은 정부의 자리는 썩 매력적이지 않다. 박 대통령 또한 챙겨주는 성격이 아니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박 대통령은 ‘의리’를 강조하지만 의리로만 결속하는 조직은 없다.
일각에서 TK(대구경북)에선 박 대통령의 영향력이 퇴임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대단한 착각이다. 대한민국 산업화를 이룬 박정희의 딸이자, 부모를 모두 총격에 잃은 ‘비운의 공주’ 박근혜에게 느끼는 ‘짠한’ 부채의식은 대통령이 되면서 갚았다. ‘성공한 대통령’이 된다면 모를까, 쉽지 않은 일이다.
대통령 성공 막는 ‘보스’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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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