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을 받아야 할 죄가 있는데도 요행히 면한다면
속이는 풍조가 만연할 것입니다
有可罰之罪而幸免 則欺罔之風滋矣
유가벌지죄이행면 즉기망지풍자의
―정여창 ‘일두집(一두集)’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정여창(鄭汝昌·1450∼1504)은 효행이 뛰어난 인물로 추천되어 참봉이라는 벼슬을 제수받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효자라는 헛된 명성을 얻어 참봉의 벼슬을 받게 된 것이니 제수의 명을 거두어 달라는 상소를 올리며, 다음과 같이 말을 한다.
“실제 잘한 일이 없는데도 헛되이 상을 주면 요행을 바라는 사람이 진출하게 됩니다(苟無爲善之實而虛賞 則僥倖之人進).”
그럼 잘못한 사람이 벌을 받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잘못이 있어도 벌을 면할 수 있는 길이 있으므로 자신의 잘못을 고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너도나도 동참하여 하나의 사회 풍조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 정여창은 실상에 맞지 않는 상을 내린 것을 거두어 달라고 청하며 상벌의 기능과 폐해에 대해 논하였는데, 어쩌면 후자에 더욱 중점을 두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실제 효자가 아닌데도 남들이 효자로 오인하도록 행동한 것은 사람들을 속인 것이며, 나라에 전해져 관직의 포상에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국가를 속인 죄가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제라도 실상을 밝히지 않는다면 이는 임금을 속이는 일이 되므로 죽음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라 하였다.
정여창의 본관은 하동(河東)이고, 호는 일두(一두)이다. 사림의 영수였던 김종직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 등의 직임을 지냈다. 무오사화로 귀양을 갔다.
이정원 한국고전번역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