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조선 후기 유학자 이윤영(李胤永·1714∼1759) 선생의 ‘단릉유고(丹陵遺稿)’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부친이 단양군수로 계실 때 따라갔다가 보고 들은 일이랍니다. 자신의 생사는 돌보지 않은 채 맹수에게 달려든 아우. 아우와 함께 표범을 때려잡은 형. 본능에서 나온 행동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형제는 용감했다’입니다. 형제는 표범을 관가에 바쳤고 선생의 부친은 그들에게 곡식 몇 섬을 상으로 내리며 아울러 천한 신분도 면하게 해주었다는군요. 선생은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으면서 ‘표범가죽 옷에 대한 명(표구명·豹구銘)’이라는 제목으로 경계의 글을 지었습니다.
표범이 사람을 문 것은 표범이 사납기 때문이요(虎而서人, 虎之所以爲虐),
사람이 형을 구한 것은 사람으로서 덕을 세운 것이다(人而救兄, 人之所以立德).
표범은 사납기 때문에 그 가죽으로 옷을 해 입고 그 고기를 먹는 것이다(惟虐也故, 衣其皮而食其肉).
만약 사람이 되어 남을 해치려는 마음을 갖는다면, 이는 표범의 적이라 할 것이다(若使人而有害人之心, 是虎之賊).
이 명을 지은 이유는 첫째, 나무꾼 형제의 용감함과 의로움을 드러내기 위해서이고, 둘째, 어려움에 처했을 때 구차하게 모면하려고만 하고 이익을 보면 의리 따위는 잊어버리는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옳지 않은 일을 보면서도 짐짓 외면하고 비겁해지는 우리 가슴이 표범 발톱에 할퀸 듯 뜨끔합니다.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