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훈 정책사회부장
이달 초 정부의 미세먼지 종합대책 발표에 앞서 동아일보는 ‘환경부가 도시 미세먼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유차 기름값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세제 변경의 핵심 권한을 가진 기재부가 ‘유가 인상은 증세’라며 반대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유가 조정은 가계 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민감한 이슈인 만큼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부처의 입장으로 이해가 됐다.
정작 실망스러웠던 건 경제 관리들의 입에서 지나간 ‘미세한’ 말들이었다. “단순히 미세먼지 하나의 변수 때문에 경유가 인상을 검토할 수 없다.” “미세먼지 대책으로 건드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최고의 엘리트라는 기재부 공무원 맞나? 환경과 건강 정책에 대한 무지인가? 부처 이기주의인가? 아니다. 이들은 미세먼지 문제를 국가적 과제로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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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정부가 특단의 대책이랍시고 미세먼지 대책을 내놓은 날 매우 불쾌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윤성규 환경부 장관은 “현재 초미세먼지(PM2.5) 농도 수준(서울 ㎥당 23μg)을 2026년까지 유럽 도시 수준(파리 18μg, 런던 15μg)으로 낮추겠다”고 했다. 얼핏 2026년이 되면 서울과 유럽 도시의 미세먼지 수준이 비슷해진다는 말로 들린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2026년 서울의 미세먼지 수준을 2016년의 런던, 파리에 맞춘다는 것이다.
못 알아들은 사람이 바보라고? 그건 거짓말이나 다름없다. 유럽 선진국이 머지않아 경유차의 도심 진입을 완전히 막거나 판매조차 금지하는 등 우리보다 훨씬 강력한 규제를 시행할 것이라고, 그 때문에 10년이 지나도 그들과의 미세먼지 격차는 줄지 않는다고 왜 말하지 않나.
이 작은 땅덩어리에 50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다닥다닥 붙어사는 현실을 고려하면 그들보다 더 선제적이고 공격적인 환경 대책을 세워도 될까 말까 한 판이다. 우리가 발상 자체를 완전히 바꾸지 않는 한 죽었다 깨어나도 그들을 앞지를 수는 없는 것이다.
‘2007년 유류세 조정을 통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100 대 85로 맞춘 것’은 금과옥조가 아니다. 진짜 필요하면 경유가 조정이 아니라 그 이상의 힘든 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예리한 통찰력으로 시대를 내다보고 갈등과 이견을 조정하는 구심점이 돼야 할 엘리트 공무원이라면 뭔가 달라야 하지 않을까. 윤 전 장관처럼 본인이 처음 공직 생활을 시작했을 때와 비교해 그 다름을 가슴으로 벅차게 느끼는 공무원들이 많을 것 같다. 이제는 미래를 보는 공직자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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