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룡농원 이상열 대표의 감성농장
이상열 어룡농원 대표가 회원들에게 분양한 배나무를 소개하고 있다. 회원들은 배나무를 키우면서 배 농장에서 파티와 캠핑을 즐기기도 한다. 이 대표는 “농업에서도 과거처럼 재배와 수확에만 머무르는 방식이 아니라 주어진 자원을 가지고 다양하게 활용하는 전략을 연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천안=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9일 찾은 충남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의 배 농장 어룡농원은 이처럼 다른 배 농장과 풍경이 많이 달랐다. 이름표를 단 배나무들은 이상열 어룡농원 대표(48)가 2013년부터 일반인들에게 분양한 것이다. 총 1300그루 가운데 200그루가 분양됐다. 분양 비용은 나무 1그루당 1년에 35만 원이다.
어룡농원 배나무를 분양받은 회원들은 해당 나무에서 열리는 배를 모두 가져갈 수 있다. 그 밖의 혜택이 더 많다. 농장에서 캠핑하거나 주말 바비큐 파티를 할 수 있다. 캠핑장 외에 따로 숙박시설이 있어서 소모임 워크숍도 열 수 있다. 그때마다 이 대표는 직접 나와서 회원들을 돕는다. 이 대표는 배꽃이 피는 4월 말과 배를 따는 10월 초에 회원들을 모두 불러 파티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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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동 여문 배나무…충성고객 확보
어룡농원 배나무에 달린 이름표. 자녀의 이름을 넣거나 사랑을 약속하는 문구를 새기기도 한다.
그는 고객이 주문한 상품을 받을 때까지 세 번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배를 포장할 때 사진과 함께 한 번, 택배 차량에 실을 때 사진과 함께 한 번, 그리고 마지막으로 잘 받았는지 확인하는 문자다. 자신이 주문한 상품의 배송 과정을 실시간으로 사진과 함께 확인한 고객은 감동을 받는다. 이 대표는 올해 초 한 고객으로부터 ‘이 서비스를 주문자뿐만 아니라 배를 선물로 받는 사람들에게도 보내주면 안 되느냐’는 건의를 받았다. 설날, 추석 같은 성수기 때 선물로 나가는 배는 약 1000상자로 받는 사람이 수백 명에 이른다. 고민 끝에 이 대표는 건의를 받아들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 선물을 받은 사람들이 나중에 또 다른 고객이 되더라고요. 그때 느꼈죠. 귀찮고 힘든 일은 ‘블루 오션’, 왠지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은 ‘레드 오션’이라는 것을….”
○ 끊임없는 연구가 핵심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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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의 이런 아이디어는 거저 얻은 것이 아니다. 건설사 분양팀장으로 20년 가까이 일한 그는 2011년 말 회사를 관두고 귀농을 준비했다. 부친이 가꿔오던 배 농장을 물려받기로 했다. 하지만 안주하면 시장 환경 변화에 대처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귀농을 준비하던 2011년부터 농업과 관련된 교육이라면 발 벗고 찾아다니며 들었다. 170만 원의 수강료를 낸 교육도 있었다. 그는 제주도 감귤 농장과 협업해 올해부터 배나무와 감귤나무를 함께 분양하는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그는 “농업에 ‘로또’는 없다”라고 단언한다. 귀농을 준비 중인 사람들은 막연히 밑천을 갖고 조금만 노력하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는 “한국의 농업기술은 상향 평준화돼 있다. 지원 체계도 잘돼 있어서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농산물 하나만 갖고는 뛰어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다. 가령 배 농장만 하더라도 배의 맛이 크게 뛰어나서 고객이 찾는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보다 고객에게 감동을 줘서 제품을 신뢰하도록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농업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은 무궁무진해요. 예전에는 누구도 물을 사먹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죠. 이제는 공기도 사서 마시는 시대예요. 그렇다면 ‘배나무 농장의 신선함을 담은 공기’ 같은 상품도 만들 수 있겠죠. 물론 그 상품에는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가 꼭 담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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