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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개국 어울린 원곡초교… “우리반 반장은 흑인친구예요”

입력 | 2016-06-13 03:00:00

[심층탐사기획/프리미엄 리포트/다문화 인구 200만 시대]
다문화인 밀집지역 4곳 가보니




‘다문화 인구 200만 명’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다. 아이들은 다른 언어를 쓰는 외국인 친구들과 한 반에서 공부하고, 외국어 간판이 한국어로 된 간판보다 더 많이 내걸린 지역도 있다.

중국동포들은 지역의 죽은 상권을 되살렸다. 더럽고, 어렵고, 위험해 한국인이 취업을 꺼리는 업종은 외국인 근로자의 노동력 없이는 돌아가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한국에 정착한 외국인 상당수는 사회 내부로 편입되지 못한 채 그들끼리 따로 ‘섬’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다문화 인구 밀집지역으로 꼽히는 경기 안산시 단원구 원곡본동,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영등포구 대림2동, 광진구 자양4동을 돌아봤다.

○ 바뀌는 초등학교 풍경

“얘가 중국말을 하면 우리는 ‘한국말로 말해줘’ 하면서 같이 놀아요.”

9일 대림2동 대동초교 운동장에서 뛰놀던 3학년 어린이들은 “외국에서 온 친구가 있느냐”고 묻자 중국에서 온 아이를 가리키며 활짝 웃었다. 아이들에게 국적이나 말은 크게 상관없는 듯했다.

경기 안산시는 외국인 주민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 가운데 하나다. 전체 79만1524명 중 다문화 인구가 8만3648명에 이른다. 국적까지 다양해 안산 원곡초교에는 18개국 출신 아이들이 다닌다. 이 학교 관계자는 “워낙 다양한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섞여 지내다 보니 걱정했던 차별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언어, 다양한 인종을 접하고 자란 덕에 오히려 편견이 없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이 학교에서는 흑인 어린이가 반장 선거에서 선출된 적도 있다.

중국동포가 밀집해 있는 구로구에는 전교생 중 다문화가정 자녀의 비율이 40%에 이르는 초등학교도 있다. 가리봉2동 영일초교 관계자는 “입학할 땐 동포였지만 귀화해 한국인이 됐거나, 자신이 동포임을 밝히지 않는 ‘숨은 중국동포’까지 합치면 그 비율은 절반이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정도가 되자 학교도 손놓고 있을 수 없게 됐다. 영일초교는 한국어가 서툰 학생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기 위해 ‘다문화 언어교실’을 열고 있다. 국어, 수학, 사회 등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가 많이 나오는 과목들은 다문화가정 아이들만 따로 모아 수업하는 ‘다문화 예비학급’도 마련했다.

○ 그들이 없으면 한국사회는 올 스톱

서울지하철 7호선 대림역 9번 출구 뒷골목에는 직업소개소 10여 개가 죽 늘어서 있다. 9일 오전 9시 이곳에서는 중국동포 70여 명이 직업소개판에 붙은 A4용지 크기의 전단지를 꼼꼼히 읽어보고 있었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성 출신 김정복 씨(57)는 “한국인이 꺼리는 업종이지만 외국인 근로자가 많아지면서 경쟁이 심해졌다”고 말했다.

외국인 주민들은 죽어가는 거리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중국동포들의 홍대’라 불리는 대림2동은 주말이면 전국 각지에서 모인 중국동포들로 한 걸음 떼기도 힘들 정도다. 이곳 음식점 주인 김모 씨는 “이들은 두 명이 와도 요리 4개를 주문하는 등 씀씀이가 다르다”며 혀를 내둘렀다.

과거 중국동포들은 한국에서 돈을 벌어 주로 본국에 송금했다. 그러나 요즘은 국내에 정착해 결혼하고 집도 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 덕분에 이 지역 부동산 경기도 호황이다. 구로구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는 “과거 중국동포들은 전·월세를 구하는 세입자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10명 중 3명은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라고 전했다.

○ ‘외딴섬’으로 고립되는 외국인 밀집지역

다문화 인구의 급격한 유입과 왕성한 소비 덕에 활력을 되찾은 지역도 속속 나타나고 있지만 이곳에 살던 한국인 대부분은 이들과의 공존을 거부한 채 떠나는 현상도 있다. 외국인 주민들 역시 한국사회에 깊숙이 동화하려는 노력보다 차라리 그들만의 고립된 섬처럼 남아 있는 것을 편하게 여긴다.

대림2동은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지는 곳이다. 지난해 대림2동에서 대림3동으로 이사 간 송모 씨(73·여)는 “밤에도 소리를 질러대는 중국동포들 때문에 제대로 잘 수가 없어 30년 넘게 살아온 대림2동을 떠났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박민홍 씨(45)는 “학교 앞에서도 남루한 행색으로 아무렇지 않게 담배연기를 내뿜는 중국동포들 사이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은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중국동포들이 운영하는 가게가 늘면서 머물고 싶어도 밀려나는 한국인도 있다. 서울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일대에는 중국어 간판을 내건 중국음식점이 즐비하지만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은 15년 된 족발집이 유일하다. 중국동포 진명옥 씨(56)는 “중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입맛에도 맞고 모이기도 좋아 한국인 가게는 외면하게 된다”고 말했다.

서광석 이주민사회통합지원센터장은 “외국인 밀집지역은 외국인들이 한국사회 정착을 위한 노하우를 공유하고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순기능이 있다”면서 “외국인도 한국의 법과 문화를 존중하고, 반대로 한국인도 이들을 포용할 수 있는 성숙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산=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허동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