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여성은 ‘언제 어디서든 당할 수 있다’는 범죄의 일상화가 두려운 판인데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모르는 여성혐오까지 신경 쓰며 살아야 할 판이다.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직장과 학교에서 생활한 뒤 병원을 찾거나 친구와 노래방에서 놀다가 귀가하는 하루 동안 여성에게 안전한 공간은 어디인가. 아침마다 아이와 남편을 문 밖에서 배웅하고 가볍게 뒷산에 오르거나 마트에서 장을 보는 평범한 주부의 일상 역시 틈새를 노린 강력 범죄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 극히 일부라곤 하지만 교사와 의사처럼 믿고 의지하던 사람이 그 신뢰를 이용해 성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평범한 뉴스가 되어 버렸다. 지하철 노래방 뒷산 마트는 흉악범이 여성을 범행 대상으로 삼는 주요 장소다. 배웅할 때 집에 숨어들어 주부를 살해한 사건도 있었다.
범죄 불안감만 이 땅의 딸들을 휘감고 있는 게 아니다.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으니 좀 나아지리라 믿었던 ‘유리천장’은 ‘방탄유리’가 돼 버리는 중이다. 현 정부 장관 중에선 여성가족부 강은희 장관이 유일한 여성이다. 다른 부처 모든 장관은 그 분야에서 어떤 여성보다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가 보다. 유리천장 지수가 4년 연속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꼴찌라고 발표되는데도 정부가 “능력 위주의 양성평등이 실현되는 중”이라고 반박을 왜 못 하는지 모르겠다.
동아일보는 국내 20대 그룹의 여성 임원 비율이 10년 만에 2배 이상으로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좋은 뉴스지만 두 배로 늘어 2.2%에 불과하다. 삼성은 2000명 중 58명(2.9%), 현대차그룹은 10명으로 0.9%다. 2014년 기준 페이스북은 여성 임원 비중이 25%, 트위터는 22%, 애플은 18%라고 한다.
그나마 낫다는 대기업이 이 정도이니 다른 규모의 기업이나 조직은 말할 것도 없을 듯하다. 여성이 육아를 전담해 회사에 소홀한 게 문제라면 남성도 아이를 키우게 하면 될 일이다. 1년 육아휴직 기간을 남편과 아내가 반씩 쓰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이 있다.
범죄 불안감에 더해 바늘구멍 같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으니 딸도 아빠도 속 뒤집힐 일이다. 오죽하면 “딸에게 ‘아예 이민 가 살아라’라고 말하겠다”는 아빠도 여럿 봤다. 이런저런 사정을 봤을 때 실행이 어려워 보이는 사람도 푸념하듯 이런 말을 던졌다. 그때마다 “그런 말 말아요. 좋아지고 있잖아요. 우리 딸들이 컸을 때면 살기 괜찮을 거예요”라고 말해줬어야 했는데 고개만 끄덕이고 입은 떼질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