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社 구조조정 표류]STX-성동조선 시너지 기대에도 각자 채권단 손실 꺼려 합병 결렬 SPP조선, 작년 8척 수주했지만 몸사린 은행들 보증 안서줘 무산 큰 그림 그려야 할 정부는 팔짱만… 국책銀도 정치권 입김에 휘둘려
2014년 하반기 시장에서는 STX조선해양과 성동조선해양에 대한 통합·합병 아이디어가 급부상했다. 두 회사를 통합하고 ‘몸집’을 가볍게 해 경기침체기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하자는 방안이었다. STX조선의 기술력과 넓은 야드(작업장)를 가진 성동조선의 강점이 더해지면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하지만 논의는 진척되지 않다가 결국 백지화됐다. 합병의 경제적 타당성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STX조선해양의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과 성동조선해양 주채권은행인 수출입은행이 합병에 따른 손실을 조금이라도 더 적게 부담하겠다고 나서면서 싸운 것이다. 정부도 두 국책은행의 갈등을 말리지 못하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포기했다.
○ 불구경하는 정부, 갈팡질팡 채권단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실패한 데는 정부의 구조조정 청사진이나 채권단 간 의사소통이 부족했던 영향이 크다. 정부는 ‘시장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내세우며 언제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한발 물러나 있었고 이는 컨트롤타워 부재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채권단은 부실기업을 ‘살릴지, 말지’를 두고 갈팡질팡하기만 했고 구조조정은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갈지자’ 행보를 보였다.
실제로 자율협약 중이던 SPP조선은 지난해 말 유조선 8척을 수주하고도 채권단 일부에서 환급보증서(RG)의 발급을 거부함에 따라 수주가 취소됐다. 뒤늦게 채권단이 2월 신규 수주 건에 대해 RG를 제공하기로 입장을 바꿨지만 이미 SPP조선은 일감 상당수를 놓친 뒤였다. 채권단 관계자는 “정상화를 위해서는 신규 수주가 필수적인데 리스크가 커질 것을 걱정한 일부 은행이 나서지 않아 애로사항이 많았다”며 “당국도 ‘관치금융’이란 비판을 우려해 개입을 꺼리다 보니 채권은행 간 의견 조율이 쉽지 않다”고 전했다.
채권단의 보신주의도 구조조정을 늦추는 주된 원인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홍기택 전 산은 회장도 그랬지만 시중은행장들도 법정관리를 결정지었을 때 감당해야 할 수조 원의 부실을 두려워한다”며 “그래서 ‘내 임기만은 피하자’며 해당 기업의 미래를 장밋빛으로 보는 경향이 많다”고 전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남창우 연구위원은 “국책은행들이 부실기업의 워크아웃 개시 시점을 지체시키고 지원을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며 “경제성 외에 여러 가지를 고려하다 보니 자산 매각 및 인력 구조조정에도 소극적”이라고 지적했다.
○ 정치 外風도 구조조정 지연시켜
정치권의 입김도 방해 요인이다. 홍기택 전 산은 회장, 이덕훈 수은 행장 등 대선 캠프 출신이 국책은행 수장이 됐지만 과감한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기에는 역량이 떨어졌다는 평가다. 4·13총선 등 선거철이 올 때마다 ‘속도 조절’도 이어졌다. 지난해 말 채권단이 STX조선해양에 대해 추가 지원을 결정했던 배경에도 총선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기업이 부실을 숨기지 못하도록 ‘감시견(watchdog)’ 역할을 해야 할 회계법인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통상 회계법인은 구조조정에 직면한 기업의 현재 가치와 미래 가치를 종합 분석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대우조선해양의 경우처럼 수익을 부풀리고 경영 환경을 낙관적으로 예상하는 사례가 많았다. 국내 회계법인 고위 임원은 “용역을 받는 회계법인 입장에서는 기업이 잘못된 판단을 내려도 이의를 제기하기 쉽지 않은 형편”이라고 말했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이건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