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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청문회, 두루뭉술 주제 없고 꼭 필요한 증인만 소환

입력 | 2016-05-24 03:00:00

[상시 청문회법 논란]효율성 중시하는 선진국




국회를 통과한 상시 청문회법은 연중 내내 청문회가 열리는 미국 의회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미 연방 상원과 하원은 여름 휴회 등을 제외하곤 각 상임위원회나 소위원회가 주최하는 청문회 일정이 빼곡하다. 미 상원 외교위의 경우 5월 한 달 동안 최소 11건의 청문회가 잡혀 있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의 민주주의 역사만큼이나 청문회의 제도적, 정치 문화적인 토양이 확연히 달라 선진국의 제도를 벤치마킹한다고 해서 한국 현실에 맞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지금처럼 여야가 철저히 당리당략으로 움직이는 구태의연한 정치 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시기상조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우선 미 의회 청문회는 개최 목적이 구체적이고 아주 명확하다. 한국의 개정된 국회법은 ‘소관 현안’이면 청문회를 상시적으로 열 수 있도록 했지만 워싱턴 의회에서 ‘소관 현안 청취’라는 두루뭉술한 주제로 청문회가 열리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상원 외교위가 25일 개최할 청문회의 주제는 ‘해외 해킹세력에 대한 연방정부의 사이버안보 전략’으로 크리스토퍼 페인터 국무부 사이버안보조정관 1명만 증인으로 부른다. 주제에 맞는 정부 인사를 최소한으로 소집해 압축적이지만 실질적인 청문회를 여는 것이다.

또 한국과 달리 청문회 시간을 미리 정해 놓고 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다. 입법에 도움을 받기 위해 정부 인사뿐 아니라 민간 전문가도 부르기 때문이다. 미 하원 외교위는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인 1월 13일 ‘북한의 도발에 대한 미 정부의 대응’을 주제로 청문회를 열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빅터 차 한국석좌와 마이클 그린 일본석좌 등이 증인으로 참석했다. 이날 청문회는 오전 10시에 시작해 정확하게 정오에 끝났다. 에드 로이스 외교위원장은 “다들 바쁜 만큼 청문위원들은 핵심적인 질문만 해 달라”고 주문했다. 상원 외교위가 26일 여는 ‘마약과의 전쟁’ 청문회는 국무부 당국자 3명을 불러 오전 9시부터 1시간 반 동안 열린다.

청문회가 철저히 정책 질의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도 한국과는 확연히 다르다. 특정 현안과 관련한 청문회는 물론이고 행정부 고위직 및 연방 판사 등 2000여 명의 상원 인준 청문회는 공직후보자의 정책과 주요 이슈에 대한 의견 청취에 집중된다. 후보자의 개인 신상이나 도덕성 문제는 연방수사국(FBI)과 국세청(IRS)에서 사전 스크린 작업을 따로 거치므로 청문회에서 다시 논의하지 않는다. 후보자 가족을 청문회장에 초청해 축제 같은 분위기를 만드는 것도 개인 신상에 대한 불필요한 질문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달 19일 빈센트 브룩스 신임 주한미군사령관의 상원 군사위 인준 청문회에선 6시간 내내 미 정부의 대북정책과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 대한 질의응답만 오갔다. 브룩스 사령관은 도널드 트럼프를 사실상 대선 후보로 선출한 공화당 의원들에게 “미국이 핵우산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스스로의 안보를 위해 자체 핵무장에 나설 것”이라며 트럼프의 한반도 공약을 우회적으로 비판했지만 단 한 번의 고성도 터져 나오지 않았다.

지난해 1월 18일 미 역사상 첫 흑인 여성 법무장관인 로레타 린치 후보자에 대한 상원 법제사법위 청문회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오바마케어’(건강보험 개혁) 등을 놓고 공화당 대선 주자였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등이 거친 질문을 쏟아냈으나 마지노선을 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중에는 크루즈가 “수고했다”고 격려하고, 린치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마무리했다. 이날 청문회는 인신공격, 막말, 삿대질이 없는 ‘3무(無) 청문회’라는 평가를 받았다.

의원내각제 전통이 강한 영국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에선 총리가 매주 국회에 출석해 의원들로부터 국정질문을 받는다. 그러나 해당 부처에서는 장관들에게 기본적인 자료만 준비해줄 뿐 많은 공무원들이 의회에서 대기해 행정부 업무가 마비되는 일은 찾아볼 수 없다. 총리나 장관은 기본적인 정책 자료만 갖고 의원들과 치열한 토론을 통해 스스로 방어하고 설득한다.

일본에선 ‘공청회(公聽會)’라는 청문회 제도를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에서 도입했다. 일본 국회법 51조는 ‘공적 위원회는 일반적 관심 및 목적이 있는 중요한 안건에 대해 공청회를 열고 실제 이해관계를 가진 자 또는 학식 경험자들로부터 의견을 들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총예산과 극히 중요한 법안의 경우에만 열리며 공청회를 여는 시점에 이미 각 의원의 표결 내용은 대부분 정해져 있어 형식에 그치는 편이다.

워싱턴=이승헌 ddr@donga.com /파리=전승훈 /도쿄=서영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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